▲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이 지난 7월에 열린 ‘스토리 데이(Story Day)’에서 회사의 핵심 전략인 ‘탄소 사업에서 그린 중심 사업으로(Carbon to Green)’를 발표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한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것이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2018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 기온이 2035~2052년에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할 경우 2℃ 이내로 억제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1.5℃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 순제로(Net-Zero, 넷제로)’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세계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Carbon neutral) 선언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정부도 2020년 10월,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12월에는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석유·가스 산업 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크게 기업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과 생산된 연료의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이 있다.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석유·가스 산업 부문의 배출량은 생산 과정 9%, 사용 과정 33%로 모두 42%를 차지한다.(1)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는 기후변화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매년 3.4기가톤에 해당하는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 이는 현재 배출량의 90%가량을 감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는 방안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에너지 이용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소비 감축,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에너지에서 탈피해 신재생에너지로 이행하는 에너지 전환, 그리고 화석에너지 개발과 사용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저장하는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탄소포집저장)가 그것이다.
(1) 출처 : https://www.mckinsey.com/industries/oil-and-gas/our-insights/the-future-is-now-how-oil-and-gas-companies-can-decarbonize
석유 메이저(국제석유회사)들의 탄소 저감 전략을 보면 유럽계 석유 기업들과 미국계 석유기업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다. 유럽계인 BP, 쉘, 토탈에너지스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미국계인 엑손모빌과 쉐브론은 기존의 석유 사업에 집중하면서 CCS 등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유럽계 중에서도 BP는 2020년에 가장 먼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방향성을 확실하게 제시했다. BP는 2030년까지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40% 감축하고 재생에너지를 통한 발전량을 50GW(기가와트)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2) 이와는 달리 미국계인 엑손모빌은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는 CCS 기술력을 강화하고 바이오 연료의 선진화를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멕시코만에 수백만 톤의 탄소를 포집·격리할 수 있는 1천억 달러(한화 약 117조 8천억 원) 투자 규모의 CCS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3) 쉐브론도 CCS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미국계와 유럽계 석유 메이저가 저탄소 전략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현재 각 기업이 처한 사업 여건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계 메이저가 매장량 보유 규모, 생산 유전에 대한 접근성, 확보한 시장의 크기 등 석유 사업 운영에서 유럽계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2) 출처 : https://www.bp.com/en/global/corporate/news-and-insights/press-releases/bernard-looney-announces-new-ambition-for-bp.html
(3) 출처 : EI, Oil Daily, Nov. 17, 2021.
산유국 국영석유회사들도 탄소 저감을 위해 사업을 조정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 중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가 처음으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UAE의 국영기업인 ‘ADNOC’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0년까지 30G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할 계획이다.(4) 사우디아라비아도 지난 10월, 206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인 아람코(Aramco)는 2025년부터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하여 수전해 방식으로 그린 수소(5)를 생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하루 650톤의 그린 수소를 생산한 후 암모니아 합성 공정을 거쳐 그린 암모니아로 제조하여 수출한다는 계획이다.(6)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는 이미 블루 수소(7)를 생산해 수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4) 출처 : EI, Petroleum Intelligence Weekly, Nov. 26, 2021.
(5) 그린 수소 :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하여 생산하는 수전해 수소를 말한다. 그린 수소는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전무한 수소인 셈이다.
(6) 출처 : https://www.airproducts.com/news-center/2020/07/0707-air-products-agreement-for-green-ammonia-production-facility-for-export-to-hydrogen-market
(7) 블루 수소 : 그레이 수소 추출 때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저장하거나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적용해 보관함으로써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공정을 통해 생산된 수소를 말한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 중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지난 7월 처음으로 205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와 함께 플라스틱 리사이클 등 친환경 비즈니스 모델 강화, 배터리 중심의 그린 포트폴리오 강화, CCS 사업 참여 등 주요 전략을 제시했다. SK이노베이션의 친환경 화학 사업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2025년까지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내 부지에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공장인 ‘도시유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 SK지오센트릭 나경수 사장이 지난 8월 열린 SK지오센트릭의 ‘브랜드 뉴 데이(Brand New Day)’에서 회사의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자회사인 ‘SK온’은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밸류체인(Value Chain)을 완성하고 자동차 제조사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정보전자소재 사업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국내 최초로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의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의 석유개발(E&P) 사업 자회사인 ‘SK어스온’과 정유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는 탄소 포집 기술을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 내 주요 이산화탄소 발생 공정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한국석유공사가 2025년부터 동해가스전을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CCS 사업과 연계되어 있다.
▲ 한국석유공사의 동해가스전
이처럼 글로벌 메이저와 국내 기업들은 모두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해 다양한 방면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석유화학 기업들이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즉, 석유화학 기업들은 여전히 주종 에너지인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사업에도 직접 진출해 에너지 전환을 주도할 것이라는 의미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기존 사업을 재편성하는 것은 탄소 저감 전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