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씬 시티’에서 본 지구를 구하는 기술
2022.01.06

▲ ‘CES 2022’ SK 전시관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Green Forest Pavilion)의 1구역 ‘그린 애비뉴(Green Avenue)’ 중 안전(Safe) 섹션에서 소개되는 SK의 전기차 배터리 및 소재들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이명(異名)은 ‘씬 시티(Sin City·죄악의 도시)’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덮인 고급호텔, 합법화된 카지노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룰렛 등에 시선을 뺏기다 보면, 왜 이 같은 별명이 붙었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 도시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 2022’가 열리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말초적인 자극, 지속적인 즐거움을 줄 쾌적한 미래를 향한 기술에 대한 염원 등은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의 일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씬 시티에서는 전 세계의 혁신 기업이 모여 각종 기술을 뽐냈다. 메타버스, NFT(Non-Fungible Token), VR, AR…. 비슷한 듯 다른, 다양한 기술의 향연에서 올해는 다소 생뚱맞은 이슈가 핵심 주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바로 ‘지구를 구하는 기술’.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나올 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지구를 구하려는 기업들의 태도는 상당히 진지하고, 그 기술 또한 쉽게 보기 힘든 인상적인 것들이 다수다.

 

우선 20만m2(약 6만 500평) 규모 전시장 속 975m2(약 300평)의 숲부터 살펴보자. 이색적으로 들리는 이 공간은 5일(현지 시간)부터 7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2’에 SK가 꾸린 전시관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Green Forest Pavilion)’이다.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녹지로 채운 이 공간은 화려한 기기, 디스플레이로 채워 시선을 잡아끄는 인근 다른 전시관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띈다.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의 반응도 호기심이 먼저다. ‘각종 혁신 기술을 자랑하는 장(場)에서 숲이라니, 가드닝(원예) 기술이라도 선보이려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고 ‘그린 애비뉴(Green Avenue)‘에 첫발을 딛는 순간 깨닫게 된다. 숲은 기술을 펼치는 공간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가져올 결과라는 것을.

 

SK는 이번 CES 2022 전시를 통해 각종 기술을 통한 탄소 감축을 약속했다. 전시관의 슬로건부터 ‘동행-탄소 없는 삶, 그 길을 당신과 함께 걸어갈 동반자 SK’다. 4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SK주식회사,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하이닉스, SK에코플랜트 등 SK 계열사들이 함께 낼 수 있는 시너지를 보여준다.

 

숲 사이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키오스크를 통해 첨단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린 애비뉴’, 산에서 옮겨 놓은 듯한 나무가 한가운데 세워진 ‘생명의 나무’ 등에선 세부적인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내일로 가는 발걸음’, ‘그린 플레이그라운드’ 등 두 공간에서는 기부와 게임 등을 통해 탄소 저감 기술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감할 수 있다.

 

직접 관람을 시작해보자. 전시장 전면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마주하는 것은 SK온의 배터리 ‘NCM9’이다. 파우치 모양의 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구성하는 주 원료 니켈(N), 코발트(C), 망간(M) 중 니켈 비중이 90%에 달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니켈 비중을 높이면 성능을 얻지만, 안전성은 떨어진다. SK온은 독자적인 기술을 통해 안전성도 함께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CES 2022 주관사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도 이 배터리에 ‘차량 엔터테인먼트 및 안전’ 분야와 ‘내장기술’ 분야 혁신상을 수여했다.

 

NCM9은 미국 포드가 생산하는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에 탑재될 예정이다. 4만 달러(한화 약 4,762만 원) 이하의 가격에 출시되는 포드 F-150 라이트닝은 생산 전부터 20만 대 가량의 선주문이 몰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중 4분의 3은 이전에는 포드 차량을 구매한 적 없는 고객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성능과 가격을 가진 차량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내 신차의 평균 판매 가격을 발표하는 ‘켈리 블루 북’에 따르면 2021년 팔린 픽업트럭의 평균 가격은 5만 6,000달러(한화 약 6,666만 원)이다.

 

관람객이 NCM9 배터리 옆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분리막, SK넥실리스의 동박, SK루브리컨츠의 전기차용 윤활유다. 매력적인 전기차는 합리적인 가격에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배터리가 탑재돼야 만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배터리는 양질의 소재가 필요하다. SK온의 배터리는 각 기술에서 글로벌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의 협업을 바탕으로 완성된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분리막 사업을 통해 2030년 이후부터 매년 417만 톤의 탄소 배출을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 1인당 배출한 탄소가 12.5톤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약 33만 3,600여 명이 배출하는 탄소를 줄이는 셈이다. 이는 세종시 인구보다는 적고, 경기 광명시 인구보다는 많은 규모다.

 

단순히 배터리를 만들어 전기차에 탑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기차가 배출하는 탄소는 내연기관차보다 적지만, 전기차와 배터리를 제조하는 과정에서도 탄소는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재사용과 재활용이다. SK 전시관에서는 배터리 재활용(BMR) 사업과 그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 재활용은 수명을 다한 배터리에서 리튬 등 핵심 광물을 추출해 다시 배터리 제조에 사용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 쓴 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을 추출하는 것은 광산에서 리튬을 채굴하는 것보다 40~70% 적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 같은 재사용이 가능한 배경엔 SK온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배터리 분석 솔루션’이 있다. 배터리 분석 솔루션은 전기차 등에 탑재된 배터리 상태를 모니터링해 잔여 수명을 예측한다. 이 같은 배터리 잔여 수명 예측은 배터리 렌털·충전·재사용·재활용 등으로 이어지는 BaaS(Battery as a Service) 사업의 근간이 된다. SK온은 배터리 분석 솔루션을 전기차뿐만 아니라 전기 수직 이착륙 항공기(e-VTOL) 등 미래 이동수단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가능한 한 적은 양의 탄소만 배출해 배터리를 개발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친환경 슬롯머신, 수소 크레인 등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대체 식품을 활용한 음식을 만드는 푸드트럭 교환권. 모르고 먹었더라면 진짜 구분하기 힘들었을 대체육 등을 맛볼 수 있다.

 

글 | 홍석호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