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복나눔
[1% 행복나눔 Story⑧] “두 팔과 함께한 30년보다 지금이 더 행복” – 의수 화백 석창우
2019.11.25 | SKinno News

 

2014년 3월 16일, 소치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이 진행된 피시트 올림픽 주경기장에 등장한 동양인 화백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많은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려내는 그의 어깨에는 두 팔 대신 의수가 있었다.

 

약 35년 전, 불의의 사고로 양팔과 발가락 두 개를 잃은 석창우 화백은 동서양의 조화가 돋보이는 ‘수묵 크로키’ 화법을 창시하며, 독보적인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을 비롯해 국내외 4백 회 이상의 전시와 퍼포먼스는 물론, 방송 및 광고 출연까지 계속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석 화백의 힘찬 행보를 지지하기 위해 사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본급 1%를 기부해 조성한 ‘1% 행복나눔’ 기금을 활용해 그의 의수 제작을 지원했다.

 

두 팔을 잃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석 화백을 그의 44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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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하신 후 열두 번의 수술 끝에 양팔과 발가락 두 개를 잃고 의수를 착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큰 사고를 딛고 다시 일어나게 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약 35년 전, 전기기사 일을 하던 도중에 22,900볼트에 감전되었습니다. 그 정도의 감전이면 보통 양팔과 양다리를 모두 절단하거나 심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걸어 다닐 수 있고 의수를 낄 수 있는 정도로 다쳐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엔 이 상태에서 무엇이든 해보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서는 데 있어 무엇보다 역시 가족이 큰 힘이 되었죠. 아내가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제가 당한 사고에 좌절하지 않고 본인이 경제활동을 하겠다고 해줘 다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척 편했어요

 

Q2.힘든 재활 속에서도 그림을 그려달라는 아들을 위해 참새를 그려준 일화는 많은 이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데요. 본격적으로 그림에 뜻을 갖게 되신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아들에게 그려준 참새 그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림에 큰 뜻이 없었는데, 손을 잃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이후 제 그림을 본 아내와 처형의 권유 덕분에 ‘내가 그림이라는 것을 그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그림 그 자체가 즐거워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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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동서양의 융합이 두드러진 ‘수묵 크로키’라는 새로운 장르의 창시자로 유명하신데요. 다양한 미술 장르 중에서 서예와 크로키를 택하게 된 계기와 이를 결합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A> 그림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여러 곳에서 거절도 많이 당했습니다. 손이 있어도 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다루기 힘든데, 어떻게 손 없이 그림을 그리려 하느냐고요. 문득 서예라면 먹물 하나만 사용하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서예의 길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만 서예가 여태명 선생님을 찾아가 포기할 때까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죠.

 

크로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서예를 하던 중, 우연히 누드크로키를 접하게 되면서 모델의 움직임이 삼라만상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어요. 몸짓 하나하나가 산수도 되고 동물도 되는 게 무척 신기했습니다. 사람의 움직임을 서예와 접목해 일필휘지로 그려내야겠다는 생각이 ‘수묵 크로키’를 탄생시킨 것이죠.

 

Q4. 지금까지 해오신 수많은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뜻깊은 작품/퍼포먼스는 무엇인가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4년에 소치 패럴림픽 폐막식에서 했던 퍼포먼스였습니다. 856cmx210cm에 달하는 대형 화선지에 동계 패럴림픽의 5개 경기 종목을 그려야 했는데, 원래 7~8분 정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다가 갑자기 2분 40초로 줄어든 거예요. 처음에는 너무 당황했지만, 기도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니 신기하게도 줄어든 시간 내에 작업이 끝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안 되는 작업이었는데, 딱 제시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4만 5천여 명의 관중이 주목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는 내내 소리 하나 안 들리고 작품에 몰두한 순간이었죠.

 

Q5.화백님께 ‘도전’ 은 어떤 의미인가요?

 

A>양팔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사람들의 편견이 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면 무엇이든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의수를 맞출 때도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어 활용성이 좋은 갈고리 의수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야 했죠. 블루투스 이어폰도 5~60번 정도는 시도해야 귀에 낄 수 있더라고요. 한 번 성공을 한 뒤부터는 성공하는 횟수가 점차 많아졌고 지금은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병뚜껑을 따는 것도 처음엔 두 시간 동안 실랑이를 해야 가능했는데 성취감 때문인지 실제로는 음료가 미지근했는데도 제게는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할 수 없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여기서 할 수 없는 것이란 제가 하기 싫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싫어하는 것도 노력하면 할 수 있지만 전 제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결국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다만 바로 시작하는 것, 시간이 걸리는 것,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세 가지 단계로 나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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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석창우 화백이 착용한 의수

 

Q6. SK이노베이션의 ‘1% 행복나눔’ 기금을 통해 의수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A> 예전에는 의수가 정말 비쌌고 지원 자체도 많이 없었어요. 특히, 저는 화가라는 직업 특성상 의수를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고장이 잦아 수리를 많이 받아야 했고, 그만큼 비용 부담도 컸는데요. SK이노베이션에서 흔쾌히 의수 제작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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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의수 지원을 받기 전·후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A> 주로 선 상태에서 허리를 굽힌 자세로 그림을 그리거나 필사를 하는데요. 이전에 착용했던 의수는 허리로만 지탱해야 해서 다소 불편했었는데, SK이노베이션의 지원을 받아 만든 지금의 의수는 보조가 되어 허리가 덜 아프고 훨씬 편해요. 또한, 갈고리가 코팅되어 있어서 물건을 잡거나 하기에도 훨씬 편해 신문이나 스마트폰 등을 더 자유롭게 보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무게감이 있어 필사할 때 글씨가 더 탄탄하게 써지고 느낌도 잘 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작년에 성경을 필사하면서 ‘석창우체’라는 폰트를 만들었는데 이 의수 덕분에 폰트가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Q8.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신다면?

 

A> 올해 40일 동안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체코를 다니며 성지순례와 함께 현지에서 광장 퍼포먼스, 그림 활동 등을 하고 왔습니다. 유럽에 있는 동안 특히, ‘투르 드 프랑스*’에서 쉼 없이 페달을 밟는 선수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는데요. 이번에는 골인 지점의 순간을 담았지만 다음 기회에는 개조한 트럭을 타고 따라다니며 그림을 그릴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 투르 드 프랑스 (Tour de France) : 1903년에 창설된 프랑스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로, 매년 7월 약 3주 동안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를 일주한다. 장기 레이스인 데다가 난코스가 악명 높아 ‘지옥의 레이스’로도 불린다. – 출처 : 시사상식사전

 

석 화백은 내년 1월 10일까지 세종시에 위치한 비오케이아트센터에서 ‘경륜(競輪)’을 소재로 한 44번째 개인전을 진행한다. 석 화백의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숭고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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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에 위치한 ‘비오케이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석창우 화백의 44번째 개인전

 


 

계속해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끝없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석창우 화백. 인생의 경륜을 그려나가는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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