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6일, 소치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이 진행된 피시트 올림픽 주경기장에 등장한 동양인 화백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많은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려내는 그의 어깨에는 두 팔 대신 의수가 있었다.
약 35년 전, 불의의 사고로 양팔과 발가락 두 개를 잃은 석창우 화백은 동서양의 조화가 돋보이는 ‘수묵 크로키’ 화법을 창시하며, 독보적인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을 비롯해 국내외 4백 회 이상의 전시와 퍼포먼스는 물론, 방송 및 광고 출연까지 계속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석 화백의 힘찬 행보를 지지하기 위해 사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본급 1%를 기부해 조성한 ‘1% 행복나눔’ 기금을 활용해 그의 의수 제작을 지원했다.
두 팔을 잃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석 화백을 그의 44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만났다.
Q1.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하신 후 열두 번의 수술 끝에 양팔과 발가락 두 개를 잃고 의수를 착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큰 사고를 딛고 다시 일어나게 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약 35년 전, 전기기사 일을 하던 도중에 22,900볼트에 감전되었습니다. 그 정도의 감전이면 보통 양팔과 양다리를 모두 절단하거나 심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걸어 다닐 수 있고 의수를 낄 수 있는 정도로 다쳐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엔 이 상태에서 무엇이든 해보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서는 데 있어 무엇보다 역시 가족이 큰 힘이 되었죠. 아내가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제가 당한 사고에 좌절하지 않고 본인이 경제활동을 하겠다고 해줘 다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척 편했어요
Q2.힘든 재활 속에서도 그림을 그려달라는 아들을 위해 참새를 그려준 일화는 많은 이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데요. 본격적으로 그림에 뜻을 갖게 되신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아들에게 그려준 참새 그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림에 큰 뜻이 없었는데, 손을 잃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이후 제 그림을 본 아내와 처형의 권유 덕분에 ‘내가 그림이라는 것을 그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그림 그 자체가 즐거워졌고요.
Q3.동서양의 융합이 두드러진 ‘수묵 크로키’라는 새로운 장르의 창시자로 유명하신데요. 다양한 미술 장르 중에서 서예와 크로키를 택하게 된 계기와 이를 결합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A> 그림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여러 곳에서 거절도 많이 당했습니다. 손이 있어도 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다루기 힘든데, 어떻게 손 없이 그림을 그리려 하느냐고요. 문득 서예라면 먹물 하나만 사용하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서예의 길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만 서예가 여태명 선생님을 찾아가 포기할 때까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죠.
크로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서예를 하던 중, 우연히 누드크로키를 접하게 되면서 모델의 움직임이 삼라만상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어요. 몸짓 하나하나가 산수도 되고 동물도 되는 게 무척 신기했습니다. 사람의 움직임을 서예와 접목해 일필휘지로 그려내야겠다는 생각이 ‘수묵 크로키’를 탄생시킨 것이죠.
Q4. 지금까지 해오신 수많은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뜻깊은 작품/퍼포먼스는 무엇인가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4년에 소치 패럴림픽 폐막식에서 했던 퍼포먼스였습니다. 856cmx210cm에 달하는 대형 화선지에 동계 패럴림픽의 5개 경기 종목을 그려야 했는데, 원래 7~8분 정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다가 갑자기 2분 40초로 줄어든 거예요. 처음에는 너무 당황했지만, 기도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니 신기하게도 줄어든 시간 내에 작업이 끝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안 되는 작업이었는데, 딱 제시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4만 5천여 명의 관중이 주목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는 내내 소리 하나 안 들리고 작품에 몰두한 순간이었죠.
Q5.화백님께 ‘도전’ 은 어떤 의미인가요?
A>양팔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사람들의 편견이 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면 무엇이든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의수를 맞출 때도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어 활용성이 좋은 갈고리 의수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야 했죠. 블루투스 이어폰도 5~60번 정도는 시도해야 귀에 낄 수 있더라고요. 한 번 성공을 한 뒤부터는 성공하는 횟수가 점차 많아졌고 지금은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병뚜껑을 따는 것도 처음엔 두 시간 동안 실랑이를 해야 가능했는데 성취감 때문인지 실제로는 음료가 미지근했는데도 제게는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할 수 없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여기서 할 수 없는 것이란 제가 하기 싫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싫어하는 것도 노력하면 할 수 있지만 전 제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결국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다만 바로 시작하는 것, 시간이 걸리는 것,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세 가지 단계로 나눌 뿐입니다.
▲ (좌) 석창우 화백이 착용한 의수
Q6. SK이노베이션의 ‘1% 행복나눔’ 기금을 통해 의수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A> 예전에는 의수가 정말 비쌌고 지원 자체도 많이 없었어요. 특히, 저는 화가라는 직업 특성상 의수를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고장이 잦아 수리를 많이 받아야 했고, 그만큼 비용 부담도 컸는데요. SK이노베이션에서 흔쾌히 의수 제작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Q7.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의수 지원을 받기 전·후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A> 주로 선 상태에서 허리를 굽힌 자세로 그림을 그리거나 필사를 하는데요. 이전에 착용했던 의수는 허리로만 지탱해야 해서 다소 불편했었는데, SK이노베이션의 지원을 받아 만든 지금의 의수는 보조가 되어 허리가 덜 아프고 훨씬 편해요. 또한, 갈고리가 코팅되어 있어서 물건을 잡거나 하기에도 훨씬 편해 신문이나 스마트폰 등을 더 자유롭게 보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무게감이 있어 필사할 때 글씨가 더 탄탄하게 써지고 느낌도 잘 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작년에 성경을 필사하면서 ‘석창우체’라는 폰트를 만들었는데 이 의수 덕분에 폰트가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Q8.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신다면?
A> 올해 40일 동안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체코를 다니며 성지순례와 함께 현지에서 광장 퍼포먼스, 그림 활동 등을 하고 왔습니다. 유럽에 있는 동안 특히, ‘투르 드 프랑스*’에서 쉼 없이 페달을 밟는 선수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는데요. 이번에는 골인 지점의 순간을 담았지만 다음 기회에는 개조한 트럭을 타고 따라다니며 그림을 그릴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 투르 드 프랑스 (Tour de France) : 1903년에 창설된 프랑스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로, 매년 7월 약 3주 동안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를 일주한다. 장기 레이스인 데다가 난코스가 악명 높아 ‘지옥의 레이스’로도 불린다. – 출처 : 시사상식사전
석 화백은 내년 1월 10일까지 세종시에 위치한 비오케이아트센터에서 ‘경륜(競輪)’을 소재로 한 44번째 개인전을 진행한다. 석 화백의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숭고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세종시에 위치한 ‘비오케이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석창우 화백의 44번째 개인전
계속해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끝없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석창우 화백. 인생의 경륜을 그려나가는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