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전문가 칼럼
[기고] 그린으로 플렉스하자 : ESG 경영과 환경인문학의 접점
2022.06.08 | 김병희

▲ (좌) 2022년 SK이노베이선이 선보인 ‘그린(Green)으로 플렉스(Flex)’ 인쇄 광고 ‘열쇠(종합)’편 / (우) SK이노베이션이 2021년에 선보인 영상 광고 ‘ESG가 간다 – 이런 생각 굿’편(2021)

 

사회 곳곳에서 ESG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기업에서도 ESG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ESG의 가치를 강조하는 광고들도 늘어나고 있다. SK그룹이 ESG 경영과 재무적 이야기(financial story)를 강조한 이후, 지금은 기업경영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ESG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보호(Environment)와 사회공헌(Social) 및 거버넌스(Governance, 윤리경영 혹은 지배구조 개선)를 실천해야,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경영철학이다.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물론, 수많은 기업들이 ESG 철학을 정착하기 위해 조직을 신설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계획을 마련해 기업의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ESG라는 단어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기업들의 이야기라니 나와는 무관한 용어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SK이노베이션의 기업광고 ‘ESG가 간다’편(2021)은 ESG의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ESG의 두(頭)문자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생각 굿”, “이런 사업 굿”, “이런 사람 굿”이라고 재미있게 풀어 쓴 다음, “E이런 S세상에 G굉장하잖아!” 같은 감각적인 카피로 광고를 마무리했다. 이런 생각, 이런 사업, 이런 사람이 ESG를 실천한다고 쉽게 설명했기에 조금은 추상적이던 ESG의 개념을 손에 잡힐 듯 이해할 수 있었다.

 

▲ SK이노베이션이 2021년에 선보인 영상 광고 ‘ESG가 간다’편(2021)

 

| “ESG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투자가치와 사회적가치”

 

기업경영의 가치 지향과 관련해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s Value), ESG 같은 용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혼용돼 왔다. 기업의 사회적책임이나 공유가치창출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ESG는 기업경영과 재무활동에 있어 환경보호, 사회공헌, 지배구조 요소를 연동해 재무적 안전성을 모색하려는 관점이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신뢰여부가 관건이므로, 지속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비재무적 지표를 중시한다. 결국 ESG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투자가치와 사회적가치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은 ESG 활동을 강화하고 사회적 실천과제에 대한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기업평가에 활용하고 있는 ESG 평가항목은 세가지 영역에 걸쳐 다양하다.

 

 

나아가 환경파괴로 인해 인류의 발전이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는 반성이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논의되면서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개념도 제시됐다.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에서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보고서에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개념을 공식적으로 정의했다. 그 보고서에서는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역량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도 충족시키는 발전’이 지속가능발전이라고 정의했다. 최근에는 경제발전, 사회통합,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발전으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2015년 9월 유엔총회에서는 ‘세계의 변혁: 지속가능성을 위한 2030 의제(Transforming Our World: The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문서에는 전 세계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2030년까지 공동으로 달성하기로 합의한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가 담겨 있다. 여기에서 지속가능비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란 전 세계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2030년까지 공동 달성하기로 유엔총회(2015.9)에서 합의한 17개 정책 목표로, “어느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다(Leaving No One Behind)’는 포용성이 목표 달성의 핵심이다.

 

모든 지구인에게 직면한 빈곤, 불평등, 기후위기, 폭력 같은 문제가 특정 집단이나 국가만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고 관련 문제에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기에,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유엔은 2017년 3월에 232개 지표를 개발했고 같은 해 7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됐다. 2020년에는 36개 지표를 변경해 2022년 현재 231개 지표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유엔은 지표별로 국제기구를 담당자로 지정해 지표 방법론 개발과 데이터 수집의 역할을 부여하고 국가별로 SDGs 데이터 국가책임기관을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통계청의 통계개발원이 ‘유엔 SDGs 데이터 국가 책임기관’으로 지정돼, 국내 24개의 지표 관계 부처와 협력하여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 현황 2021’ 발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ESG는 인류 미래 모색하는 환경인문학과 높은 상관관계 있어”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ESG의 개념을 단순히 좋은 일이나 착한 일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이며 착한 일인 것은 분명하나, 그러한 소박한 차원의 선행 정도로만 ESG를 이해한다면 그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ESG는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기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라는 측면에서 가치와 의의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ESG는 기업 입장에서도 중요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모색하는 환경인문학의 차원에서도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환경인문학자들은 인류가 처한 환경에 인문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오래오래 지속가능한 인류의 생존방안을 탐구해왔다. 가톨릭 사제이자 환경사상가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2009)는 ‘인간의 재발명’을 주창한 바 있다. 그는 브라이언 스윔(Brian Swimme, 1950~)과 함께 쓴 ‘우주이야기(The Universe Story(1992))’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진단하며 이제 인류가 전환시대에 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나아가 그는 이 책의 결론에서 지구와 인류가 영원히 생존하려면 문명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문명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맞이할 시대를 ‘생태대(Ecozonic Era)’로 명명했다.

 

▲ 카톨릭 사제이자 환경사상가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2009) – 이미지 출처 : https://www.journeyoftheuniverse.org/

 

그는 정치, 경제, 대학, 종교를 인간 사회의 네 가지 주체로 규정하고 인간 중심의 문명에서 생태 중심의 문명으로 전환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자고 제안했다. 즉, 앞으로의 인간은 지구 공동체의 생명 체계를 고려해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종(種)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며, 기존의 인간을 지구 생태계를 보호할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시켜야 한다는 가히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인간의 재발명을 지향하는 철학에 기반해 그동안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우월적 존재로 살아온 인간이 인간 중심주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권고했다.

 

토마스 베리는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에 따라 지구의 생명체가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앞으로 인류 문명이 생존하려면 생명 중심주의에 기초한 생태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인간이 지구를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사귀어야 할 주체로 받아들일 때에만 앞으로 생태대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지질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를 대(era), 기(period), 세(epoch)로 구분한다. 그 기준에 비춰볼 때, 토마스 베리가 제안한 ‘생태대(Ecozonic Era)’의 개념은 기업의 경영활동에 필요한 의미심장한 통찰력을 제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토마스 베리의 『우주 이야기(The Universe Story)』(1992) 표지 – 이미지 출처 : 토마스 베리 재단(https://thomasberry.org/)

 

| “ESG가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단순한 유행이나 수단이 아니라 기업이 나아가야 할 생태 경영의 방향타”

 

생태대에 대한 관련된 주장은 기업들의 ESG 경영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ESG 경영은 이윤추구와 팽창에만 치중해오던 기업들에게 지구 환경과의 공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은 작년 7월 1일 ‘SK이노베이션 스토리데이(Story Day)’ 행사를 갖고 향후 5년간 30조원을 투자해 친환경 사업의 비중을 30%에서 70%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1962년 국내 첫 정유기업으로 출범한 SK이노베이션이 기업의 사업방향을 ‘탄소에서 그린으로(Carbon to Green)’ 완전히 바꾸겠다고 했으니, 기업경영 패러다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과장해서 상상해보자. 탄소 중심 사업에서 그린 중심 사업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면 언젠가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지구상에 존재치 않게 될 것이며, 훗날 인류학자들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생태대’의 시작을 알린 계기를 마련했었다라고 평가할 지도 모를 일이다. 플라스틱 재활용을 중심으로 하는 순환경제, 배터리 재활용, 주유소를 그린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 등 ESG에 기반한 비즈니스 전환(Transformation)을 적극 실천해 간다면 SK이노베이션이 한국에서의 생태대 형성 여론을 환기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와 같은 ESG 경영과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고려해 2022년 들어 ‘그린(Green)으로 플렉스(Flex)’라는 슬로건을 사용한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 화학, 배터리, 소재 사업 등을 운영하는 8개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로 각 회사들이 동일한 광고 콘셉트를 유지하되 사업 특성에 알맞게 회사별 메시지를 특화시켰다. 그렇다면 ‘그린으로 플렉스’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에서는 플렉스(flex)를 자기만족이나 자기 과시를 위해 값비싼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라고 풀이한다. 플렉스의 라틴어 어원은 플렉수스(flexus)로 구부림, 혹은 다른 방향을 의미하는데, 1990년대 미국의 힙합 가수들을 통해 재물이나 능력을 과시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발전했다. 한국에서는 2019년 이후 ‘과시적 소비’ 혹은 ‘솔직하게 과시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니까 SK이노베이션의 핵심어인 ‘그린으로 플렉스’란 말은 남들보다 먼저 그린 경영을 실천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겠다는 뜻이 되겠다.

 

▲ 2022년 SK이노베이선이 선보인 ‘그린(Green)으로 플렉스(Flex)’ 인쇄 광고(왼쪽부터 열쇠(종합편), 페트병(SK지오센트릭 편), 자동차 배터리(SK온 편))

 

SK이노베이션의 광고 ‘열쇠’편(2022)을 보면 우선 선물 상자가 눈에 띈다. 고급스럽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여니 황금 열쇠가 들어있다. 열쇠고리 쪽에 재활용 마크가 장식돼 있고 요철 부분에는 SK이노베이션이라는 기업명이 붙어 있다. 카피는 간명하다. “그린으로 성장하는 SK이노베이션과 함께~, 그린으로 플렉스.” SK이노베이션이 그린 기업의 내일을 여는 열쇠가 되겠다는 다짐을 천명한 광고다. 굳이 그걸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자랑하고(flex)하고 싶다며 재치 있게 접근했다.

 

SK지오센트릭의 광고 ‘페트병’편(2022)에서도 같은 디자인 스타일을 유지했다. 선물 상자 안에는 황당하게도 찌그러진 페트병 세 개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 페트병들은 그냥 버려져 있는 게 아니라 재활용 마크를 이루고 있다. 황당함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비주얼에 “도시유전으로 성장하는 SK지오센트릭과 함께~, 그린으로 플렉스.”라는 카피가 놓여 있다. 폐플라스틱 리사이클 사업을 통해 이를 다시 원료로 활용해 내는 도시유전의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광고다.

 

SK온의 광고 ‘자동차 배터리’편(2022)을 보면 선물 상자 속 모형 자동차의 투명 실루엣 속에 SK온의 로고가 새겨진 배터리가 눈에 두드러진다. 선물 상자를 묶은 띠에는 ‘Carbon to Green’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카피는 ‘배터리로 지구 살리는 SK온과 함께~, 그린으로 플렉스.’ 배터리 사업을 통해 지구를 살리는 데 기여하겠다는 기업의 의지와 당당함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이상에서 살펴본 SK이노베이션 광고는 ‘그린으로 플렉스’라는 슬로건과 핵심 이미지들을 통해 기업의 지향가치와 실체의 변화를 웅변해 낸다. 이는 ESG가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단순한 유행이나 수단이 아니라 기업이 나아가야 할 생태 경영의 방향타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모습이다.

 

| “그린으로 플렉스한다면 인간을 재발명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기술로 극복하려는 인간 중심의 ‘기술대’(Technozoic) 문명을 지향하는 과학자들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기술 중심의 문명을 경고한 토마스 베리의 생태 중심의 문명관은 인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 ESG 화두 등을 접하면서 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난 그가 지금의 우리에게 인간 중심의 ‘기술대’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생태대’를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필자의 선택은 ‘생태대’이다.

 

토마스 베리의 말처럼 국가연합(United Nations)은 앞으로 종의 연합(United Species)으로, 민주주의(Democracy)는 생명주의(Biocracy)로 진화해 갈 개연성이 높다. 환경인문학의 핵심 관심사는 사회와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있다. ESG 경영의 핵심 관심사는 비재무적 지표의 지속가능성이다. 이 둘은 마치 일란성 쌍둥이와도 같다. 환경인문학자들이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주목한다면, ESG 경영을 선도하는 기업인들은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런 점에서 환경인문학자들과 ESG 경영인들은 토마스 베리가 권고했듯이 지금 인간을 ‘재발명’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SK이노베이션의 광고처럼 우리가 ‘그린으로 플렉스’한다면 인간을 재발명 하는 데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병희
필자는 현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 정부광고자문위원회 초대 위원장, 서울브랜드위원회 제4대 위원장으로 봉사했다. ‘디지털 시대의 광고 마케팅 기상도’(2021)를 비롯한 6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고, 광고와 PR에 관한 11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한국갤럽학술상 대상(2011), 제1회 제일기획학술상 저술 부문 대상(2012), 한국연구재단의 우수 연구자 50인(2017)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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