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픽업트럭의 시대가 열린다”
2021.10.05

▲ 지난 6월에 열린 ‘인터배터리(InterBattery) 2021’의 SK이노베이션 부스에 전시된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를 탑재한 포드社의 ‘F-150 라이트닝’

 

미국의 대형 픽업트럭을 처음 봤을 때, 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 커다란 크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02년 당시에 새롭게 출시된 토요타 툰드라(Toyota Tundra)는 토요타 호주(Toyota Australia)가 시험용으로 수입한 모델로, 랜드크루저(Land Cruiser) 모델보다 너비 면에서는 4인치(약 10cm), 길이 면에서는 약 3피트(약 1m)가 더 큰 거대한 차량이었다. 미국인이 이를 4분의 3 크기의 트럭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미국에서 사용하기에는 크지 않았던 탓에 높은 판매량을 달성하기는 어려웠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호주의 목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픽업(Pickup) 또는 현지에서 ‘유트(ut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차는 일반 차량과 비교해 현저히 크지는 않았다. 내가 운전할 줄 아는 픽업트럭은 2.0리터, 4기통 엔진을 갖췄으며 그 크기는 통상적인 미국 픽업트럭 모델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몇 년 뒤 캐나다로 건너오면서 토요타 제품기획(Toyota Product Planning)팀과 협업해 당시 새로운 툰드라 모델을 출시하게 되었다. 이 모델은 디트로이트 3사 제품과 같은 ‘풀 사이즈’ 제품으로 380마력의 8기통(V8) 엔진을 탑재했으며, 일부 모델의 경우 차체 길이가 19피트(약 5.8m)에 달해 주차하기가 까다로웠다.

 

툰드라는 연료 소비가 심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고속도로에서는 100km당 15리터, 시내에서는 100km당 20리터를 소모해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으며, 현대 엘란트라(Hyundai Elantra)와 같이 효율성이 높은 소형 차량에 비해선 놀랍게도 3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만약 트럭 뒤편에 커다란 보트 또는 캠핑용 트레일러를 연결할 경우, 연료 소비량은 순식간에 두 배로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북미에서 이 모든 수치는 정상이다. 대도시의 한복판을 벗어나면 여기저기에서 대형 픽업트럭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의 ‘일반적인 상태’에서 연간 1천 7백만 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미국 시장의 경우 픽업트럭은 약 280만 대가 판매되며, 여기에 캐나다에서의 판매량을 더하면 40만 대가 추가된다. 즉 북미 지역의 픽업트럭 판매량은 약 180만 대의 차량이 판매되는 대한민국 시장, 그리고 각각 약 2백만 대의 차량이 판매되는 캐나다 및 영국 시장 전체 판매량보다도 높은 셈이다. 북미 픽업트럭 판매 시장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한다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국가인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픽업트럭 판매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3가지 모델은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포드 F-150(Ford F-150)과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의 쌍둥이 모델인 GMC 시에라(GMC Sierra)와 쉐보레 실버라도(Chevrolet Silverado), 그리고 닷지 램(Dodge RAM)이다. 토요타와 닛산(Nissan)은 지난 몇 년간 툰드라와 타이탄(Titan) 같은 강력한 제품을 출시했지만, 인상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픽업트럭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픽업트럭이 부의 중심지에서 사실상 높은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한때 캐딜락(Cadillac)이 그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픽업트럭과 이에 어울리는 액세서리(자동차 옵션)의 중요성이 커졌다. 물론 해안 지역에서는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렉서스(Lexus), 테슬라(Tesla)가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지만, 수백 마일 안쪽에 자리한 내륙 지역에서는 여전히 픽업트럭이 도로를 지배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 자동차 제조사에게 있어 픽업트럭은 커다란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로 꼽힌다. 최상위 모델의 가격은 8만 달러(한화 약 9천 4백만 원)에 달하며 다수의 운전자가 액세서리에 수천 달러를 추가로 소비한다는 점에서 픽업트럭의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미국 내 신차의 평균 판매가를 발표하는 켈리 블루 북(Kelley Blue Book)에 따르면 2021년 초부터 현재까지 딜러를 통해 판매된 픽업트럭의 평균 판매가는 5만 6천 달러(한화 약 6천 5백만 원)를 상회하며, 이는 평균 차량 판매가보다 약 2만 달러(한화 약 2천 3백만 원) 높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북미에서 대형 픽업트럭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난 100년 동안 높은 수익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연료를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전 세계 최저 수준이며, 다수의 유럽 국가에서 판매되는 가격 대비 미국에선 거의 반값으로 자동차 연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사람들이 더욱 큰 차량을 구매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시키는 차량이 크게 인기를 끌었고, 이제는 오염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국 내 등록된 약 2억 5천만 대의 차량 중 픽업트럭은 5천만 대가 넘는다. 픽업트럭의 평균 연비는 갤런(gal)당 약 15마일(약 24km)이며 이 차량이 매년 1만 5천 마일(약 2만 4천 km)을 달리는 경우, 총 7천 5백억 마일(약 1조 2천억 km)을 달리게 되고 휘발유 5백억 갤런(1,750억 리터)을 소비해 매년 4억 2천 6백만 미터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또한 수백만 톤의 유해한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미립자가 생성되면서 공기의 질을 떨어뜨리고 매년 수백만 건의 조기 사망을 초래한다.

 

이에 대해선 “휴스턴, 문제가 생겼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대형 픽업트럭 시장에 전기차 배터리가 도입되면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신생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도입을 발표한 바 있지만, 최근 포드가 프리뷰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공급한 배터리가 탑재된 F-150 라이트닝 BEV(F-150 Lightning BEV)를 발표하며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Joe Biden)이 이 차량에 처음으로 시승하면서 남긴 “이 녀석 빠르다!(This sucker’s quick!)”라는 발언도 며칠 동안 회자됐다.

 

또한 포드는 미국 중부 지역을 겨냥하여 픽업트럭을 디자인하는 기발함을 보였다. ’F-150 라이트닝’ 모델은 휘발유로 움직이는 일반적인 F-150 모델과 유사한 스타일이다. ‘메가 파워 프렁크(Mega Power Frunk)’라고 불리는 대형 전면 트렁크를 비롯해 캠핑장, 작업 현장 및 정전 시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 2.4kW용량의 V2L(Vehicle to Load) AC(Alternating Current, 교류) 전력 설비와 같은 매력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최근 자동차 업계는 이 수치가 내년 신차 출시와 함께 최대 9.6kW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포드는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F-150 모델의 부품을 ‘F-150 라이트닝’ 모델에 최대한 활용해 비용을 절감했다. 따라서 할인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의 ‘F-150 라이트닝’ 모델 판매 최저가는 4만 달러(한화 약 4천 7백만 원) 미만이며, 이는 평균 픽업트럭 구매가보다 낮은 수준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을 경우 판매가는 휘발유 모델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갖게 된다.

 

포드의 최초 발표에 따르면 2022년에 생산 라인이 가동되면 F-150 라이트닝 모델은 연간 약 4만 대 생산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차량이 처음 공개된 후 2주가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선주문량은 10만 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포드가 수요를 크게 과소평가한 것이다. 결국 포드는 9월 초에 연간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 연간 8만 대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드가 F-150 라이트닝을 출시하며 초기 전기차 픽업트럭 시장을 장악한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포드의 경쟁사 또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너럴 모터스는 2023년에 실버라도 EV(Silverado EV)와 고가의 GMC 허머(Hummer)를 선보일 예정이며,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2024년에 램 EV(RAM EV)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출시 예정인 테슬라 사이버트럭(Tesla Cybertruck)까지 고려하면 2025년에는 전기차(BEV) 픽업트럭이 연간 40만 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과 같은 배터리 공급업체에 북미 지역의 전기 픽업트럭(배터리 탑재) 시장의 급성장은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운전자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주행거리가 약 300마일(약 480km)임을 고려할 때, 많은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픽업트럭의 경우 100kWh에서 200kWh 사이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향후 15년 동안 약 280만 대의 픽업트럭이 판매될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곱하면 수많은 테라와트시 배터리가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포드와 손잡은 SK이노베이션처럼, 픽업트럭 시장의 선두주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배터리 공급업체라면 매우 드라마틱한 성장의 정점에 서게 될 것이다. 최근 북미에 대규모 배터리 생산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 포드가 발표한 ‘블루오벌SK(BlueOvalSK)’ 합작법인의 대규모 투자는 양사가 예측하는 미래 시장에 기회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는 업계가 이러한 획기적인 기회를 잡기 위해 빠르게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미국에서도 전기차는 분명히 큰 매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전기 픽업트럭은 배출가스량을 낮추고 공기의 질을 개선할 큰 기회를 상징한다. 미국 정부의 명령, 차량 배출 규제 강화와 전기 픽업트럭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결합할 때 산업의 방향은 매우 명확하다. 이는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지구와 우리 아이들에게도 환상적인 소식이다.

 

글 | James Carter
캐나다 컨설팅 업체 Vision Mobility 수석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