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전문가 칼럼
[기고] 준비된 배터리 업체의 조건
2021.09.14 | SKinno News


▲ 지난 7월 1일,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이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스토리데이’에서 회사의 정체성을 ‘탄소 사업에서 그린 중심 사업’으로 완전히 바꾸겠다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발표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태동기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자동차 업체들과 국가들은 그 어느때 보다도 전동화(electrification)를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전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은 2025년 전기차 판매비중 20%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전동화 물결이 일고 있으며 제2, 제3의 Tesla가 되는 것을 목표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포진하고 있는 유럽시장의 경우 지난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입법 패키지인 Fit for 55를 발표했는데,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현재 대비 100% 줄일 것을 요구했다.

 

자동차 산업의 전환점은 또 하나의 거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현재의 대당 $7,500씩 브랜드별로 20만대에 지급하는 연방정부 세제혜택을 크게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자동차산업 조사 기관인 마크라인즈(Marklines)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20년에 24만 9천대의 전기차 판매가 이뤄졌는데 각각 66만 1천대, 93만 5천대를 기록한 유럽과 중국에 비교해 현저하게 낮은 수치이다. 특히 24만 9천대 중 20만 5천대가량이 Tesla임을 감안하면 미국에서는 전기차 시장의 형성이 굉장히 더딘 것이다. 반면 이러한 수치는 반대로 성장이 단기간 내 빠르게 부각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GM, Ford 등 미국의 대형 완성차 업체들은 현재 전기차 개발에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다. GM은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량을 1백만대로 늘리기로 발표했고, 후발주자인 Ford 역시 2030년까지 판매량의 40%를 전기차로 전환하기로 발표한 상태다.

 

자동차산업의 전동화는 결국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 산업의 확대에 있어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핵심부품인 엔진과 변속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기술과 생산을 내재화해 왔는데, 전기차의 경우 다르다. 디젤게이트 이후에도 많은 업체들은 전기차 개발에 보수적이었고, 단순히 CO배출량 규제대응을 위해 제한적인 차원에서 전기차 개발을 하다보니 전기차용 배터리는 자동차 업체들이 아닌 전문 대형전지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시장확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배터리 업체들은 폭발하는 수요와 함께 현재의 시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급증하는 시장인 만큼 경쟁업체들의 출현은 필연적이며, 주요 정부들의 자국 배터리 산업 부양책 확대와 자동차 업체들의 배터리 산업 진출이 그 예다. 특히 VW, Daimler 등 기존 몇몇 대형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셀 생산을 부분적으로 내재화에 나서고 있는데, 현금조달여력이 높아 자체 생산능력 확보에 있어 재무적 부담도 크지 않다. 초창기의 고객사가 장기적으로는 얼마든지 경쟁관계로 발전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경쟁우위와 산업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는 현재부터 향후 최소 3년간은 공격적인 투자로 생산능력의 확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차세대 소재기술 확보를 통해 후발주자들과의 격차를 늘려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스럽게 배터리 사업에 특화된 의사결정체제, 관련 인력, 재무여력 확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은 분명 서플라이 체인 차원에서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집중된 사업구조로의 전환은 불가피하다. Delphi, Autoliv의 사례처럼 Tier-1 부품업체들은 사업구조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몇년 전부터 사업부 분할작업이 빈번해지고 있고, 최근에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사업부 분할이 본격화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최근 배터리 사업에 대해 물적분할 계획을 밝혔는데,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한 시의적절한 의사결정으로 보여지고 세가지 관점에서 물적분할 이후의 방향성을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작년부터 나타나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수요 급증은 선발진영에 속한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후발 업체들과의 격차를 확보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미래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택할 수 있는 공급 파트너는 그리 많지 않다. 차후 신설 배터리업체들의 출현은 지속될 수 있으나, 당장 2024~2025년 대량의 전기차 생산을 위해서 SK이노베이션은 완성차 업체가 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생산 파트너다. 현재 축적된 1테라와트시의 수주잔고는 글로벌 시장내 지위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한편 반대로,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도 Ford 등과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파트너십은 기회이자 미래로 가는 열쇠이기 때문에 이를 주축으로 한 영업레버리지 달성은 최대 선결과제가 될 것이다.

 

연초 결정된 Ford와의 미국 합작사와 유럽 합작사까지 감안할 경우 생산능력만 무려 240GWh가 예상되고 있다. 다만 11조원이라는 거대 투자재원의 확보가 필요한데, 사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르고 있어 영업현금흐름 보다는 외부자금 조달이 최적의 자금조달 방안이다.

 

둘째, 배터리 사업의 분사는 본연의 경쟁력인 소재기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재 내재화가 뒤처진 해외 업체들과의 격차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분리막, 동박, 양극재 등 핵심소재 내재화를 통한 가격경쟁력의 확보와 현재의 하이니켈 기반 양극재 소재뿐만 아니라 실리콘 음극재,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소재 기술에 대한 선행개발이 될 것이다.

 

배터리 사업부의 분할로 SK그룹 차원에서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머티리얼즈, SKC 등의 소재부터 셀, 모듈 생산까지의 수직계열화로 이어지는데, 집중화된 의사결정체제와 원가경쟁력 측면에서 업종 내 찾아보기 힘든 경쟁력이 될 것이다.

 

셋째, 물적분할을 통한 기존 석유화학 사업과의 분리경영은 합리적인 경영목표를 세울 수 있고, 보다 현실적인 자본의 재분배를 통해 각 사업부의 고른 성장으로 인한 총 기업가치의 추가상승을 예상할 수 있다. 석유화학 산업과 배터리 산업은 궤를 달리하고 있으며, 이익의 사이클 역시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을 반영한 사업계획을 통해 이익의 극대화 추구가 필요하다. 이는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인 주주와 임직원, 그리고 밸류체인상의 공급업체들까지 종합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전기차 시장과 더불어 배터리 업체들의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은 이제 시작되는 단계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지역에서 본격적인 전기차 시장의 확대를 알리는 총성은 이미 충분히 울렸다. 자동차산업과 소재산업의 강국인 대한민국의 차례는 돌아왔으며, SK이노베이션의 최근 변화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강국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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