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구매자들에게 차량 구매비용은 더 이상 주요 고려사항이 아니다’
몇 주 전, 토론토에 사는 이웃 한 명이 자신의 오래된 미니밴을 새 하이브리드 SUV로 바꾸려 한다며 내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당연히 전기차를 추천했지만, 한편으로는 전기차가 훨씬 비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차량 제조업체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리스 비용을 비교해 봤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웃이 관심을 기울이던 차량은 중급 XLE 트림인 토요타 RAV4 하이브리드였기에, 가격 비교를 위해 테슬라 모델 Y RWD를 선택했다. 계약금, 인센티브, 리스 기간 등 세부 조건을 설정해 보니 RAV4 하이브리드의 리스 비용이 테슬라 모델보다 월 50 CAD(캐나다 달러, 한화 약 5만 원) 미만 정도밖에 싸지 않았다.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와 퀘벡 주(州)에서 지급하는 지방 전기차 보조금을 더한다면 오히려 테슬라가 월 50 CAD 이상 더 저렴했던 것이다.
게다가 테슬라는 더 넓은 공간, 더 다양한 기본 탑재 기능 및 기술, 더 우수한 성능, 더 높은 안전 등급을 갖췄으면서도 차량 유지 및 운용비는 훨씬 저렴했다. 테슬라의 가치는 바로 이것에 있으며, 운용비 측면을 고려해 봤을 때도 훨씬 쌌다.
이 비교는 매우 중요하다. 두 SUV모델은 현재 북미에서 픽업트럭을 제외하면 판매량으로 1, 2위를 다투는 차량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점을 감안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브스(Forbes)도 동일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북미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전기차의 절반가량이 이제 내연기관차의 유지비용보다 더 저렴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 참고자료 : CarEdge, Kelly Blue Book
또한,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J.D. 파워가 최근에 완료한 전기차 보유자와 내연기관차 보유자의 5년간 유지비를 조사한 연구도 기존과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그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 중 48개 주에서 동급의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를 구매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때로는 그 차이가 1만 달러(한화 약 1,350만 원) 이상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 차이는 대부분의 구매자에게 엄청난 혜택으로 다가온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라는 것이다. 전기차가 훨씬 더 비싸지 않았던가? 답은 과거에는 그랬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 여기에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1) 코로나19로 인한 인플레이션
▲ 출처 : Cox Automotive
2022년 초부터 2023년 중반까지 신차 평균 가격은 42,000달러(한화 약 5,670만 원)에서 50,000달러(한화 약 6,745만 원)로 상승했다. 단 18개월 만에 신차 가격이 거의 20%나 급등한 것이다. 공급망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의 공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경기회복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가 올랐음에도 신차 평균 가격은 고점 대비 소폭 하락하는데 그쳤다.
교훈: 인플레이션과 금리 변동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전체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내연기관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동안, 전기차 가격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하락했다.
2) 배터리 및 전기차 부품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전체 차량 생산비용의 약 20%를 차지한다. 따라서 배터리 비용이 낮아지면 차량 전체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실제로 원자재 가격 하락과 LFP(리튬인산철) 셀(cell)과 같은 새로운 비용 절감 기술의 발전으로 배터리 비용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
교훈: 배터리 가격 하락은 전기차 가격을 낮추는 기회를 창출한다.
3) 미국 정부 보조금의 변화(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미국에서 전기차 구매 시 제공되는 7,500달러(한화 약 1,013만 원)의 인센티브가 세액 공제에서 즉시 할인 방식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인센티브가 적용되는 차량에 새로운 제한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차량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자유무역국에서 생산돼야 하며, 배터리와 그에 필요한 광물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기업에 판매되는 전기차는 여전히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리스 회사들은 전기차를 구매해 고객에게 7,500달러의 리스 크레딧(credit)을 제공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월 납입금을 크게 낮췄다. 특히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주(州)에선 전기차 리스 계약이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저렴한 경우가 흔하다.
교훈: 미국의 저렴한 전기차 리스는 제조업체(OEM) 인센티브뿐 아니라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구조와도 관련이 깊다.
4) 수요, 공급, 인센티브, 그리고 마진
코로나19 기간 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전기차보다 더 뜨거운 건 없었다. 수요가 공급을 크게 넘어섰고, OEM들은 생산 확대와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문제로 인해 수요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에는 생산(공급)이 증가한 수요를 따라잡으며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뤘고, 같은 시기에 금리가 오르며 판매 증가율(수요)도 둔화돼 재고 상황이 더 안정화됐다. 일부 모델은 OEM의 판매량 증대로 공급 과잉이 발생했지만, 이는 추가 인센티브로 재조정됐다.
공급이 균형을 이루면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처럼 거래되기 시작했다. 즉, 판매량(수요)은 경쟁 제품, 소매가 및 경제적 요인 전반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OEM의 생산능력(공급)에 좌우됐다. 공격적으로 판매해야 하거나 초과 재고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는 OEM들은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차와 마찬가지로 전기차에도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스텔란티스(Stellantis)는 최근 북미에서 당초 예상보다 수요가 적어 발생한 내연기관차 RAM 트럭과 지프(JEEP) SUV의 초과 재고를 해결하는 긴급 조치(엄청난 인센티브)를 발표했다. 다시 말해, OEM의 수요/공급 문제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는 구동 방식과 상관없는 자동차 비즈니스의 일반적인 부분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캐나다와 미국에서 동일 차량의 권장소비자가와 인센티브를 환율에 맞춰 비교해 보면 재밌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전기차의 권장소비자가는 종종 미국보다 15~20% 정도 더 저렴하다. (참고: 현대 아이오닉5) 그러나 금리가 오르면서 미국의 OEM 유통업체들은 소매할인율을 크게 높인 반면, 캐나다의 인센티브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두 나라가 각자 시장에 맞는 다른 방식으로 마진을 활용하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즉, 미국의 소매할인은 캐나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높은 권장소비자가 마진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교훈: 전기차 인센티브는 ‘전기차의 격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OEM들이 차종에 관계없이 적용해대는 전략적 비즈니스 계획 덕분이다. 미국에선 이러한 전기차 인센티브가 높은 마진에서 나오는 것이다.
5) 현지 생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변경사항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OEM들은 전기차 생산을 현지화하고 있다. 규정을 완벽히 준수하면 전기차 보조금 7,500달러를 현금 구매 및 할부와 같은 금융 구매에 적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한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는 미국 조지아주에 소재한 76억 달러(한화 약 10조 2,520억 원) 규모의 현대차 공장으로, 이곳에선 아이오닉5와 기아 EV9이 만들어진다. 연간 3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이 공장은 8,500개의 직접 일자리를 창출한다. 또한, 인근에 위치한 SK온과의 합작 전기차 배터리 셀 공장에서 3,500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할 예정이다.
북미 브랜드가 아니지만 최근 북미에서 생산을 시작한 다른 전기차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생산되는 볼보 EX90 및 폴스타3,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만들어지는 폭스바겐 ID.4, 멕시코 라모스 아리스페 공장에서 제조되는 혼다 프롤로그 및 아큐라 ZDX 등이 있다.
이로 인해 300마일(약 482km) 이상의 주행거리를 제공하는 전기차를 미국 신차의 평균 가격 이하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북미 사람이라면 누구든 받아들일 수 있는 중요한 범위에 속한다.
이러한 모든 요인이 합쳐져 전기차 판매는 전체 시장보다 더 빠르게 지속 성장 중이다. <2024년 2분기 캘리블루북(Kelly Blue Book) 전기차 판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과 2023년의 기록적인 성장률보다는 다소 하락했지만, 2024년 2분기 전기차 판매는 2023년 2분기 대비 8% 성장했다. 반면 시장 전체 성장률은 3%에 그쳤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35,000달러(한화 약 4,720만 원) 이하의 저가형 전기차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판매 중인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비교했을 때 꽤 경쟁력이 있지만, 가성비를 중시하는 고객을 위한 차량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다양한 저가형 전기차가 출시되는 유럽이나 중국 시장과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기아 EV3, 업데이트된 쉐보레 볼트, 저가형 포드 모델 등 이러한 격차를 메울 새로운 모델들이 출시를 앞두고 있기에 상황은 바뀔 것이다.
가격과 공급의 안정화는 중고 전기차 시장의 확대라는 또 다른 이점을 가져왔다. 북미에서는 신차 1대가 팔릴 때 중고차 4대가 판매된다. 전기차가 대중적인 신차로 떠오르면서 중고 전기차 수도 빠르게 늘어났다. 이러한 새로운 공급과 미국에서 도입한 전기차 세액 공제가 합쳐져 예산이 부족한 소비자도 전기차를 구매하고 운용 비용 절감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 출처 : iSeeCars
그렇다면 이제 고객들에게 전기차 구매 비용은 더 이상 최우선 고려사항이 아니게 된 걸까? 비전 모빌리티(Vision Mobility), CuriosityCX, LEK Consulting이 9개국에서 매년 3,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최신 연간 글로벌 모빌리티 연구(Annual Global Mobility Study)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기차를 살 때 제일 먼저 고려하는 요소는 구매 비용이 아닌 ‘배터리 수명’이 차지했고, 이제 구매 비용은 상위 3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물론 전기차 배터리 교체 비용이 다소 비쌀 수는 있지만, 보증 기간과 기술적 설계 덕분에 신차 구매자들이 이를 걱정할 필요는 거의 없다. 현재 판매되는 대부분의 전기차는 최소 8년 또는 12만 마일(192,000km)의 보증 기간을 제공하며, 1,500~4,000회의 충전 사이클(완충에서 완전 방전 = 1사이클), 또는 60~200만km까지 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배터리 수명에 대한 우려는 실제 데이터에 기반하기보다 편향된 매체나 휴대폰 배터리와 관련된 경험 등 다른 요인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북미에서의 전기차 대중화는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장벽과 반대 의견을 없애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때는 구매 비용이 매우 중요한 이슈였으나,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됐다. 현재는 배터리 수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긴 보증 기간과 개선된 기술 덕분에 이러한 걱정도 곧 사라질 것이다. 일부에선 화재 위험성을 우려하지만, 실제 데이터에 따르면 전기차의 화재 발생률은 내연기관차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전기차에 대한 다른 걱정거리가 생길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해결될 것이다. 전기차가 향후 20년간 주요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기차는 환경오염도 훨씬 적게 일으키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며, 이제는 가격도 더 싸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의 운명은 오르락내리락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자동차 산업에서 전기차의 지배력은 기대할 만하다. 그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