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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食] ‘빛과 소금’ 대신 ‘빛과 석유’! – 시추 기술의 발전으로 알아보는 땅 속 보물찾기
2024.06.27 | SKinno News

 

석유는 인류 역사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하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에너지원으로서 오늘날의 위상은 기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인류는 땅 속에 매장된 석유를 어떻게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일까? 수많은 가설이 있지만, 소금을 채굴하기 위해 사용하던 방식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 소금을 얻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쓰촨(四川)’은 험준한 산들로 둘러 쌓인 입지 탓에 소금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은 염분이 높은 지하수를 퍼내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소금을 얻어 냈다. 끝이 뾰족한 큰 돌을 장대에 로프로 매달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위로 끌어올린 후 땅에 내려찍는 ‘충격식 시추법’을 시도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뾰족한 돌 대신 쇠를 사용하고, 구멍이 무너지지 않도록 대나무를 삽입해 보호하면서 최대 1km까지 굴착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활용한 충격식 시추법 예시(추정) – S.T. Pees and Associates 그림 기반

1637년 명나라 학자인 송응성(Song Yingxing)이 쓴 기술 관련 백과사전 ‘천공개물(Tiangong Kaiwu)’에서 발췌. 소금을 얻기 위해 시추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출처: 위키피디아)

| 중국의 시추 기술, 어떻게 널리 퍼지게 됐을까?

 

1820년대 말 중국을 방문한 프랑스 선교사 로랑 앵베르(Laurent Imbert)에게 이 시추기술은 새롭고 놀랄 만한 것이었다. 앵베르는 그가 경험한 이 기술을 소개하는 편지를 프랑스로 보냈다. 하지만 본국의 과학자들은 그가 전한 기술을 믿지 못했고, 앵베르는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시추 기술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프랑스 과학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유럽 각국으로 전파됐다고 한다. 한편, 이 기술은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소개됐는데 이는 철도 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 석유 시추 기술의 발달 및 상업화 연대기

 

 

□ 1845년, 현대식 시추 시스템인 회전식 시추법의 등장

시추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던 1845년, 영국의 로버트 버트(Robert Beart)는 근대적인 형태의 회전식 시추법(Rotary drilling)을 고안했다. 회전식 시추는 시추관 끝에 달린 절삭 비트(Bit)를 회전시키며 시추하는 방식인데, 시추 시 발생하는 암석 쪼가리인 암편(Cuttings)을 제거하기 위한 이수(Mud)*가 필수적이다. 그는 이수 시스템 또한 고안했다.
(*) 이수(Mud): 회전식 굴착에 사용되는 수성 부유물로, 주로 암편 제거 역할을 한다.

 

□ 1846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유정(油井) – 비비헤이밧(Bibi-Heybat)

세계 최초의 상업용 유정은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Baku) 지역에 있다. 이곳의 ‘비비헤이밧’ 유전(油田)에서는 1846년, 처음으로 드릴 시추 작업을 통해 유정을 개발했고, 이는 원유를 상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17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비헤이밧 유전에는 원유가 아직 생산되고 있다.

 

□ 1859년, 본격적인 석유 상업 생산의 시작

1852년, 폴란드의 약사 이그나치 루카시에비치(Ignacy Łukasiewicz)가 원유에서 등유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인 1853년에는 주식 전문 변호사 조지 비셀(George Bissell)이 다트머스 대학교를 방문하던 중, 딕시 크로스비(Dixi Crosby) 교수의 연구실에서 석유 샘플을 접하게 된다. 석유를 조명용 기름으로 쓰면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제염업자들이 염수를 찾기 위해 시추를 하다가 석유를 발견하곤 했던 사실에 착안, 소금광산부터 찾게 된다. 그는 투자자를 모집해 세네카 석유회사(펜실베이니아 석유 회사의 전신)를 설립했다. 비싼 양초와 고래기름에 의존하던 조명이 등유로 바뀜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시추 책임자로 고용된 사람이 석유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다.

 

(좌) 에드윈 드레이크 / (우)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 위치한 드레이크 유정(Drake Well) (출처: 위키피디아)

에드윈 드레이크는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서 소금 채굴 기술을 활용해 1년 반 동안 시추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마침내 1859년 8월 27일, 지하 21.18m(69.5ft)에서 유정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이 사건은 석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증기엔진의 힘을 이용해 절구를 찧듯이 땅을 뚫는 ‘수직 굴착식 시추’에 사상 최초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첫 석유가 나온 후 1년 사이에 타이터스빌에서만 300여 개의 유정이 뚫렸고, 미국 전역에서 개발 붐이 일어나며 석유 상업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1901년, 텍사스 오일 붐의 시작 – 대형 유전, 스핀들톱(Spindletop)의 발견

1901년 1월 10일, 미국 텍사스주 보몬트 남쪽의 유전 지역에서 엄청난 굉음을 동반한 폭발이 일어났고, 곧이어 새카만 액체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근대 석유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핀들톱’ 유전이 발견된 순간이었다. 동시에 텍사스 오일 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텍사스주 보몬트 스핀들톱에서 처음으로 대량 석유 시추에 성공하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스핀들톱 유전에서는 하루 8~10만 배럴이나 되는 석유가 뿜어져 나왔다. 당시 일반적인 유전에서 하루 50~100배럴의 석유가 생산되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준이었다. 앤소니 루카스(Anthony Francis Lucas)가 고안한 증기엔진의 힘을 이용한 ‘회전식 시추법’ 덕분이었다. 이 방식의 회전식 시추법은 곧 세계 도처에서 사용됐다.

 

| 현대 석유 시추, 그것이 알고 싶다

 

현재 우리는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석유를 시추한다. 시추는 목적에 따라 크게 탐사 시추와 평가 시추, 생산 시추로 구분한다.

 

 

원유나 천연가스가 지하에 모여 쌓여 있는 ‘저류층’의 위치 및 특성에 따라 시추정의 각도가 달라지는데, 이 각도에 따라 수직정, 경사정, 수평정으로도 분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원유가 있는 곳까지 파 내려갈 수 있는 걸까?

 

가장 기본이 되는 수직정을 활용해 설명하자면, 시추관 끝에 설치된 시추 비트 및 공저장비를 이용해 땅을 뚫으며 첫 번째 케이싱(Casing)**을 설치하기 위한 심도까지 암반을 굴착한다. 이때 지층에서 파쇄된 암편은 이수 순환 시스템에 의해 이수와 같이 지표면으로 운반돼 제거된다.
(**) 케이싱(Casing) : 원유 시추 시 지층의 압력이 높아져 구멍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추공에 넣고 시멘트로 고정시킨 금속관

 

 

유체 및 첨가물 등을 혼합한 ‘이수’는 압력을 유지하고 열을 낮춰주는 필수 요소다. 또한 탐사시추 과정에서 이수로부터 운반된 암편을 분석해 석유 부존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이수 순환 이후에는 땅속의 압력을 지탱해 주변 지층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시추정에 금속관을 넣고 시멘트를 이용해 고정하는 케이싱 설치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지하 깊은 곳을 향해 단계적으로 금속관의 크기를 줄여가며, 앞서 말한 굴착 및 케이싱 설치 과정을 두세 차례 반복해 원하는 깊이까지 금속관을 겹겹이 설치하게 된다. 이러한 케이싱 작업은 깊은 지하의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고, 안전하게 원유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시추 장비인 리그(Rig)는 용도에 따라 구분된다. 육상용으로는 지표면에 고정하는 리그(Conventional)와 이동이 가능한 리그(Mobile)로 나뉜다. 해양용으로는 해저면에 고정하는 플랫폼(Platform)과 수심 100m 미만의 얕은 해역에서 사용하는 잭업(Jack-up), 더 깊은 수심에서 쓰이는 반잠수식(Semi-submersible)과 자체 항해가 가능한 선박 형태의 드릴십(Drill ship)으로 분류한다.

 

석유를 회수하는 단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처음에는 지상과 땅속의 압력 차이 또는 펌프를 이용해 석유를 생산하는데, 이를 1차 회수라 한다. 이후에 땅 속의 석유량이 줄어들고 생산 속도가 감소하면 높은 압력의 물을 주입하기도 하는데, 이를 2차 회수 또는 워터 플러딩(Waterflooding)이라고 부른다. 더불어 수증기나 가스, 화학 용액을 이용해 생산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3차 회수라고 한다.

 

화성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화 (AI 생성 이미지)

지난 세기 석유개발 산업은 진화를 거듭했다. 20세기부터 수차례 ‘몇 십 년 안에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됐지만 탐사, 시추, 생산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류는 더 깊은 땅 속, 바닷속에서 새로운 유전을 발견해 왔다. 또한, 셰일오일(Shale Oil) 등 비(非)전통 자원(Unconventional resources)까지 개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 석유매장량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기술의 진보와 산업 고도화 등에 따라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 예견되던 시점은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 등에 의한 기술 혁신과 함께 남극 및 북극을 포함한 새로운 지역의 개발이 본격화될 경우, 석유고갈에 대한 우려는 이전보다 한층 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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