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투명한 게 마음에 들어 구매한 케이스가 어느새 누런 빛으로 변색된 것을 보고 ‘내 손때 때문인가’ 생각하며 바꿔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모처럼 스포츠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찾은 운동장에서 흙먼지 낀 것처럼 색이 바랜 의자를 발견하면 ‘누군가 신발 신고 올라갔나?’ 생각하며 왠지 앉기 찝찝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색이 바랜 플라스틱, 정말 우리가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것일까? 사실 이런 현상에는 우리가 몰랐던 플라스틱의 비밀이 숨어있다.
| 플라스틱을 노랗게 만드는 범인들
스마트폰에 곱게 씌워두었던 ‘젤리’ 케이스가 노랗게 바뀌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경험한 플라스틱 ‘노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스마트폰 ‘젤리’ 케이스의 주재료가 되는 TPU(Thermoplastic Polyurethane, 열가소성 폴리우레탄)뿐 아니라 키보드, 마우스의 재료가 되는 ABS 플라스틱(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 고부가 합성수지)도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변한다. 분명 살 때는 흰색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누렇게’ 뜬 키보드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플라스틱이 노랗게 변하는 현상에 대해 흔히 알려진 원인 중 하나는 자외선이다.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은 플라스틱의 색소 분자를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착색 물질을 만들어 색상을 변화시킨다. 특히 TPU는 자외선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분자 구조가 변형되며, 그 과정에서 붉은색 분자인 퀴노이드(Quinoid)가 생성된다. 이 퀴노이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축적되며, 처음에는 투명했던 케이스가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게 만든다. 자외선 외에도 고온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플라스틱의 안정성이 약해져 변색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전자기기 주변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뜨거운 온도가 플라스틱의 분자 구조를 약화시키고, 그로 인해 색상이 변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산화 반응과 오염물질도 플라스틱 변색의 주요 원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 플라스틱이 점차 노랗게 변하는 산화 반응은 오래된 플라스틱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외부 오염물질이나 때가 플라스틱 표면에 쌓이면 물리적인 오염으로 인해 변색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청소를 통해 일부 개선할 수 있지만, 완전히 원상복구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 휘거나 바래면서 잃는 플라스틱 ‘본색’
그렇다면 플라스틱은 노랗게만 변할까? 플라스틱은 하얗게도 변한다. ‘백화현상’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열가소성 플라스틱에서 많이 발생한다.
열가소성 플라스틱은 반복적으로 구부러지거나 압력을 받을 때 내부의 고분자 구조가 이동하며 밀도 차이가 생기고, 그 결과 빛의 굴절이 달라져 하얗게 보이게 된다. 얇은 플라스틱 빨대를 잘근잘근 씹거나 사용하지 않는 신용카드를 버리기 위해 구부렸을 때, 압력을 가한 부분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열가소성 플라스틱(thermoplastic, thermosoftening plastic): 열을 가하면 녹고, 온도를 충분히 낮추면 고체 상태로 돌아가는 고분자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외부의 압력뿐만 아니라 열화나 햇빛도 플라스틱 백화현상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예로 스포츠 경기장에 설치된 의자를 꼽을 수 있다. 야외 경기장 관중석에 설치된 플라스틱 의자는 오랜 시간 강한 햇빛을 쬐게 된다. 이때 자외선의 영향으로 플라스틱 의자의 색소 분자가 변형돼 본래의 색을 잃게 되는 것이다.
습기나 극한의 온도 변화도 백화현상을 촉발할 수 있으며 일부 플라스틱 재질은 시간 경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백화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특히 자동차처럼 야외 활동이 많은 제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직사광선, 온도변화, 각종 오염물질로 인해 노화를 겪으며 하얗게 변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로, 플라스틱의 변색이 얼마나 다채로운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 플라스틱의 본색을 지키는 기술
플라스틱 변색은 단순히 외관상의 문제를 넘어 제품의 성능을 저하시킬 수 있어 플라스틱의 본색을 유지 및 복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례로 1980년대 자동차 헤드램프는 주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백화현상으로 인해 빛이 제대로 투과되지 않으며 야간 운전 시 시야 확보에 지장을 줘 안전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문제는 자동차 산업에서 플라스틱 소재를 개선하고 UV 차단 코팅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동기부여가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플라스틱의 변색을 방지 또는 복구하는 기술 및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플라스틱의 변색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최근에는 자외선 차단층을 넣은 플라스틱을 개발하거나 변색되지 않는 소재를 더해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중이다. 예컨대 스마트폰 투명 케이스는 비교적 변색에 강한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를 뒤판으로 쓰고 테두리 부분만 TPU로 만들거나, 아예 TPU에 색상을 더해 케이스를 만들기도 한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UV 차단층’과 스마트폰에서 나는 열을 막아주는 ‘과열방지층’을 추가해 변색을 예방하는 사례도 있다.
이미 변색된 플라스틱을 복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 키보드나 마우스가 노랗게 변색됐다면 과산화수소수를 희석해 바른 뒤 직사광선이나 자외선 램프를 쬐면 색이 하얗게 돌아오기도 한다. 과산화수소가 플라스틱 표면에 착색된 분자와 반응해 산화하며 표백 효과가 나타나는 원리를 활용한 방법이다.
또한, 하얗게 변색된 플라스틱에 토치(torch)를 사용해 복구하는 방법도 있다. 주로 열가소성 플라스틱에 적용되며, 실제로 스포츠 경기장의 관람석 의자 복구에 자주 활용된다. 변색된 운동장 의자에 뜨거운 화염을 쏘면 자외선에 의해 변형된 얇은 표면층이 소멸되면서, 그 아래에 있는 멀쩡한 층이 드러나 본래의 색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플라스틱의 색이 변화하는 이유와 이러한 색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제품의 성능 또는 사용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산업계는 플라스틱 변색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더 안정적인 소재를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더 나은 제품 개발로 이어진다. 자외선에 강하고 변색이 적은 플라스틱이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을 날이 앞으로 곧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