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5
봄 웜톤, 겨울 쿨톤 등 자신에게 어울리는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 찾기가 유행으로 번진 것처럼 색(色)은 패션, 뷰티를 비롯해 인테리어, 웹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미(美)를 표현하는 대표 수단이다. 그러나 색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대 이집트 시기부터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는 색채 요법을 비롯해 의학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활용돼 왔다.
‘안전’ 분야에서도 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2023년 7월부터 어린이보호구역 내 도입이 의무화된 노란색 횡단보도. 여기에 쓰이는 ‘노란색’은 그 색깔만으로 운전자에게 본인이 지나는 도로가 어린이보호구역임을 인식시키고,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곳임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인 산업현장에서는 색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 산업현장에서의 생명 보호 비결, 안전보건표지 & 산업안전색채 🎨
대한민국 산업안전보건법 37조에 따르면 안전보건표지는 산업현장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설치하는 표지를 말한다. 이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이나 물질 등 위험 요소에 대한 경고를 시각적으로 명확히 전달하며, 특히 중대재해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에 부착해 근로자들의 적절한 대응을 돕는다.
안전보건표지는 용도에 따라 금지(빨간색), 경고(노란색), 지시(파란색), 안내(녹색) 등으로 나뉘며, 그에 맞춘 색채를 체계적으로 사용한다. 이때 쓰이는 특정 색채를 산업안전색채라고 하며, 이는 제조업, 건설업 등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을 강화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산업안전색채는 시각적 신호로 작용해 언어를 초월하므로 내국인 근로자뿐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도 직관적인 위험 인지 및 즉각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 국경을 넘어 세계 산업현장의 안전을 그리는 색채🚦
미국국가표준협회(ANSI)는 근로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의 식별을 개선하기 위해 ‘ANSI Z535 표준’을 개발했다. 이 중 안전색채를 표준화하기 위한 규정인 ‘ANSI Z535.1’에 따르면 빨간색은 긴급 경고, 주황색은 주의, 노란색은 경고, 녹색은 안전, 파란색은 지시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한편, 영국 건설연합(Build UK)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안전모 색상 차별화’를 시행했다. 근로자의 직무에 따라 안전모의 색을 다르게 지정해 책임과 업무 범위를 명확히 구분한 것이다. 또한, 영국의 한 식품 제조업체는 무엇보다 위생을 중요시하는 식품 생산용 공간을 색상으로 분할하기도 했다.
|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 컬러풀(Colorful)로 안전도 풀(full)! 🌈
회색 일색인 국내 제조업계의 공장들도 심미적인 차원을 넘어 안전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안전색채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 SK이노베이션 울산Complex(이하 울산CLX)는 안전보건공단, (사)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와 손잡고 ‘색(色)으로 산재를 잡자’ 캠페인을 추진하며, 색채와 디자인을 활용한 안전문화를 구축 중이다. 울산CLX는 여의도 크기의 약 세 배인 250만 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석유화학 단지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공장이 밀집한 곳이다.
이 중 고온∙고압으로 운전되는 울산CLX의 동력공장은 정유∙석유화학 공장 운전에 필요한 스팀을 생산 및 공급하며, 배관 등 구조물이 많아 안전디자인/안전색채 도입 효과를 검증하기에 적합하다. 이에 울산CLX는 2024년 9월부터 현장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전문가들의 현장 진단을 기반으로 적용가능한 맞춤형 디자인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부터 동력공장의 이동통로, 대피로, 계단, 경계석 등에 안전디자인과 안전색채를 우선 적용했다.
적용 이후 현장 구성원들은 “색으로 구분된 대피로와 이동 통로 덕분에 비상 상황 시 더욱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위험 요소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울산CLX는 이번에 도입 및 설치한 안전디자인/안전색채의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안전문화를 구축하고자 울산CLX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어 외에도 제스처,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소통한다. 색 역시 오래전부터 강력한 비언어적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아왔다. 특히 산업현장에서의 색은 행동을 바꾸고, 사고를 예방하며, 협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색은 명확한 경계와 구분을 제시해 작업 현장에서 체계 및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또 다른 방식의 언어인 것이다. 색채가 만들어내는 큰 변화, 그 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산업현장을 보다 안전하게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