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동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2024.12.19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뉴욕의 고층 빌딩과 자유의 여신상은 허리까지 눈으로 덮여 마치 빙하기 시대로 되돌아간 듯하다. 전기가 끊긴 도시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2004년에 개봉한 재난영화 <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의 한 장면은 마치 예언과도 같았다. 실제로 2022년 미국과 캐나다에 최악의 눈 폭풍이 강타했을 당시, 많은 이가 이 영화 속의 장면을 떠올렸다.
| 20년 전에는 없었던 그것, 전기차! 그리고 2차전지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4년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 바로 전기차다. 2022년 말, 북미 지역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폭설과 눈보라(North American Winter Storm)로 캐나다 전역의 가정, 회사 등 100만여 곳이 정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한 막대한 피해가 생긴 가운데, 캐나다에 사는 한 사람이 미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쓴 글이 화제가 됐다. 그는 “온타리오 남부가 44시간 동안 정전됐지만, 전기차가 우리를 구했다”며 “냉장고와 와이파이, 조명과 TV를 이틀 가까이 작동시킨 후에도 전기차 배터리에는 전체 용량의 65%가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전기차는 포드 F-150 라이트닝(lightning) 모델이었고, 탑재된 배터리는 SK온이 2019년 세계최초로 개발한 NCM9*이었다.
(*) NCM9 : 니켈(Nickel)·코발트(Cobalt)·망간(Manganese) 중 니켈 비중이 약 90%에 달하는 고성능 하이니켈(High-nickel) 배터리
과거에 우리는 전선(電線)이 도달하는 범위 안에서만 전기를 쓸 수 있었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한 2차전지로 인해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앞서 말한 북미 지역의 눈 폭풍 사례처럼 2차전지 활용으로 정전 시 일상 유지가 가능해질 정도로 말이다. 이 외에도 전력 부재 시 치명적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병원, 데이터센터 등이 대용량 비상 전력 공급원으로 2차전지를 주목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2차전지의 용도는 더욱 확장되지 않을까?
| 스마트폰, 전기차뿐 아니라 우리 몸속에도 2차전지가 쓰인다?
🔍 [전기차] ‘이동수단’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다!
2차전지는 전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요소로, ‘전기차의 심장’이라 일컬어진다. 전통적인 내연기관차가 휘발유, 경유, LPG 등 화석연료의 폭발력을 이용해 엔진을 구동시키는 반면, 전기차는 대용량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이용해 모터를 작동시킨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4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Global EV Outlook 2024)에 따르면, 2023년 판매된 전기차는 생애주기 동안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절반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렇듯 전기차는 기후변화 대응 및 친환경에너지 전환 시대에 최적인 기술집약체인 것이다.
전기차는 에너지원과 구동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BEV(Battery Electric Vehicle, 배터리 전기차), HEV(Hybrid Electric Vehicle, 하이브리드 전기차), 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다. BEV는 오로지 배터리에 축적된 전기로만 모터를 작동시키며, 내연기관 없이 순수 전기 동력만으로 구동하므로 높은 에너지 밀도 및 출력을 가진 대용량 배터리가 탑재된다. HEV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하며, 주로 내구성과 출력 성능이 좋은 니켈수소(NiMH) 배터리나 리튬이온(Li-ion) 배터리가 탑재된다. PHEV는 일반 HEV보다 용량이 큰 배터리를 탑재하고, 외부 플러그를 통한 전기 충전이 가능하다.
이러한 전기차는 최근 V2L** 기능을 활용한 이동식 전원장치로도 사용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캠핑 등 전력 공급이 원활치 않은 야외 활동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V2L(Vehicle to Load):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의 전력을 외부로 끌어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최근 캐나다의 프리랜서 기자 ‘벤자민 헌팅(Benjamin Hunting)’이 현지 자동차 전문 매체인 드라이빙(driving.ca)에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해 화제가 됐다. 교외 숲 속에서 기자 본인의 결혼식을 열었는데, 당시 가장 큰 난제는 결혼식장으로 쓰일 장소에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케이터링 업체가 요리를 계속할 수 있는 충분한 전력과 조명이 필요한 것은 물론, 나무로 둘러싸인 결혼식장을 찾은 손님들이 어두운 밤에도 서로 부딪히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한 것. 해결책으로 떠오른 건 전기 픽업트럭인 ‘포드 F-150 라이트닝’이었다. 이 차에 탑재된 SK온 NCM9 배터리는 전압이 낮고 플러그(Plug)가 부족한 장소에서도 결혼식을 치르고도 남을 만큼의 전력을 제공해 기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러한 사실에 벤자민 헌팅은 “트럭이 더해진 배터리”라며 극찬했다. 또한, “13시간 동안 꼬박 전력을 공급한 후에도 배터리에는 94%의 용량이 남아있었다는 점이 더욱 인상적이었다”며 “결혼식이 열린 곳을 떠나는 길에 충전할 필요 없이 곧바로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 [ESS] 전력 불확실성을 ‘이것’으로 대비한다!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장치)는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 저장된 전기를 사용해 최대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피크(Peak) 부하 저감 기능을 제공하며, 전력이 갑자기 끊길 경우 비상 전원으로 활용돼 통신 시설이나 데이터센터 등에 전력을 공급한다. 또한, 태양열이나 풍력과 같은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발전원에서 생산되는 과잉에너지를 안전하게 저장 및 출력할 수 있어 효율적인 전력 소비를 가능케 한다.
SK온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한 상업용 ESS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셀(Cell), 모듈(Module), 랙(Rack) 등 ESS 전반에 걸친 배터리 제작과 최적화된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3월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2024’에서 SK온은 하이니켈 및 LFP(리튬인산철) ESS 모듈과 ESS 모듈을 직∙병렬로 이은 차세대 DC블록 모형을 처음으로 공개해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 자리에서 북미 ESS 화재안전 인증을 받은 열 확산(Thermal Propagation) 방지 솔루션, 셀 간 온도차를 최소화하고 충∙방전 효율을 높인 수냉(Liquid Cooling) 방식 등 SK온의 ESS 화재 안전 기술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 [웨어러블 디바이스] 작고 가볍게 착! 붙는 배터리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 및 밴드, 스마트 글라스 등 우리가 날마다 쓰는 소형 전자기기 발전의 핵심에도 2차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신 스마트 디바이스들은 작은 크기에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AI 구동 등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 고성능이기에 전력 소모가 많아 탑재된 배터리에 요구되는 에너지 밀도도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스티커처럼 자유롭게 탈부착이 가능하거나, 쉽게 휘어지는 플렉시블(Flexible) 배터리 등이 개발돼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착용 편의성을 높이는 데 한 몫하고 있다.
🔍 [의료기기] 인간의 몸속에서 활약하는 배터리가 있다?!
초소형 2차전지의 발달은 현대 의료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몸속에 ‘심는’ 기기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높은 신뢰성과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심장의 자체 박동조율기인 동방결절***을 대신하는 전자기기인 심박조율기나 신경자극기에 2차전지가 활용된 것은 물론, 이와 같은 체내 이식/삽입형 의료기기에 2차전지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배터리 용량의 한계로 인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터리를 교체하는 재수술이 필요해, 이러한 전원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개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 동방결절(sinoatrial node, 洞房結節): 심장의 특정한 부분으로 전기자극을 생성해 포유동물의 심장이 수축되게 하며 심장 박동의 리듬을 결정한다.
🔍 [로봇 산업] 콘센트로부터의 해방
2차전지는 공장자동화와 산업용 로봇 분야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이제 로봇은 콘센트와 전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강력한 이동능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물류 분야에선 2차전지 탑재 로봇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물류 창고나 항만에서 물건을 내리고, 찾고, 포장하는 로봇 외에도 위치 추적 기능을 활용해 식당에서 손님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AMR(Autonomous Mobile Robot)이나 AI를 기반으로 주변 환경을 스스로 감지∙반응해 고객의 집 바로 앞까지 물건을 배송해 주는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로봇(Last Mile Delivery Robot) 등 2차전지를 탑재한 로봇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2차전지의 발전 덕분에 로봇들은 콘센트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이는 산업용 로봇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2차전지는 트랜스포머? 다양한 폼팩터(Form factor)
귀에 쏙 들어가는 무선이어폰용 2차전지와 대형자동차를 움직이는 2차전지는 똑같이 ‘2차전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그 모양과 특성이 다르다. 배터리가 장착될 기기 내 공간의 크기, 배터리의 에너지밀도 및 용량 등에 따라 배터리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여러 개의 배터리 셀(Cell)을 하나의 팩(Pack)으로 묶어 탑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제조사마다 각기 다른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배터리 폼팩터(형태)별 특징은 무엇일까?
■ 전지 형태의 클래식 – 원통형(Cylindrical) 배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건전지와 유사한 금속 원기둥 모양으로, 가장 전통적인 배터리 형태다. 2차전지의 핵심 요소인 양극, 음극, 분리막을 젤리롤 방식으로 돌돌 말아 둥근 원통에 넣고 전해질을 채운 뒤 밀봉한다.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며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다. 또한,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다른 형태에 비해 용량이 상대적으로 작고 수명이 짧다. 이로 인해 원통형 배터리를 전기차에 탑재하기 위해선 여러 개의 배터리를 하나로 묶어야 해 시스템 구축 비용이 많이 든다.
■ 각 잡고 에너지 뿜뿜 – 각형(Prismatic) 배터리
알루미늄 캔 안에 양극, 음극, 분리막 등을 쌓아 돌돌 만 젤리롤을 차곡차곡 넣어서 만드는 ‘각 잡힌’ 배터리로, 납작하고 네모난 상자 모양을 띤다. 둥근 모양의 젤리롤을 사각 케이스에 넣고 전해질을 주입해 만들기 때문에 내부 공간 활용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알루미늄 캔에 둘러싸인 덕분에 외부 충격에 강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SK온은 ‘인터배터리 2023’에서 시제품 개발을 완료한 각형 배터리 실물 모형을 최초 공개한 바 있다. SK온의 각형 배터리는 빠른 충전 속도를 특징으로 꼽는다.
■ 연성(延性) 필름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전지 – 파우치형(Pouch) 배터리
부드러운 필름 주머니에 담긴 형태로 외관이 단단하지 않아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원통형, 각형 배터리와 달리 젤리롤을 사용하지 않고 음극, 양극, 분리막 등 소재를 층층이 쌓아 올릴 수 있어 내부 공간을 꽉 채울 수 있다. 이로 인해 배터리 내부 공간 효율이 높아져 에너지밀도가 높다. 뿐만 아니라 가공이 쉽기 때문에 형태의 제약이 적어 얇고 넓은 배터리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이러한 장점으로 전기차 제조사가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파우치형 배터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SK온은 ‘인터배터리 2024’에서 어드밴스드 SF(Super Fast, 급속충전) 배터리를 공개해 현장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SF 배터리는 SK온이 2021년 처음 공개한 하이니켈 배터리로, 18분 만에 셀 용량의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어드밴스드 SF 배터리는 기존 SF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는 9% 높이면서 급속충전 시간은 유지했다. 에너지밀도가 높을수록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늘어난다.
■ 동전처럼 동글 납작 – 코인 셀(Coin Cell) 배터리
작은 동전(Coin) 모양의 배터리인 코인 셀은 무선이어폰과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및 소형 의료기기 등 작은 전자기기의 주요 부품이다. 배터리 크기가 작아진다는 것은 줄어든 부피 안에 배터리의 핵심 소재들을 모두 담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최근 각종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기능이 고도화됨에 따라 전력 요구량도 늘어나게 됐고, 이로 인해 코인 셀의 에너지밀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인 숨은 주역, 2차전지의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 지금보다 더욱 높은 안전성과 에너지밀도를 지닌 배터리, 그 너머가 아닐까? 단순히 삶의 편의성을 넘어 우리의 이동방식, 생활패턴, 인프라를 혁신적으로 바꾸고 기후변화라는 전 세계적 공동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의 개발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술 혁신은 단순한 성능 향상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