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전문가 칼럼
[기고] 배터리 광물 공급망의 윤리적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
2023.03.02 | 비전 모빌리티(Vision Mobility) 수석 컨설턴트, 제임스 카터(James Carter)

 

이제는 안정적인 광물 공급량 확보를 넘어

윤리적 투명성과 지정학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한 때”

 

소셜 미디어를 보다 보면 배터리 광물 채굴의 폐해로 아동 노동 혹은 환경 훼손과 같은 불편한 사진들을 보게 된다. 물론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배터리 공급망의 채굴 및 광물 처리 단계에서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고 인권 침해를 근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친환경 청정 기술”이 되려면 단순히 결과물뿐만 아니라 전체 생산 밸류 체인 또한 깨끗하고 친환경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배터리라 하더라도 제조 과정에서 환경을 훼손하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친환경이라는 정평에 흠이 갈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서 시작된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은 빠르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 : 용량 2kWh 이상인 모든 산업용, 자동차용 배터리를 대상으로 재료 원산지, 탄소발자국,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 배터리 내구성, 용도 변경 재활용 이력 등을 상호 접근이 가능한 개방형 전자 시스템에 기록한 출처 : ESG 용어 사전

 

배터리 여권은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앞서 언급한 환경 및 윤리적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유럽연합의 큰 관심사이자 전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채굴과 관련된 인권 침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광물 관련 글로벌 협의체인 ‘책임 있는 광물 조달을 위한 협의체(Responsible Minerals Initiative, 이하 RMI)’**에 가입했다. RMI는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 성분인 코발트를 포함해 분쟁 지역에서 채굴되는 광물들의 윤리적 조달을 상시 모니터링하는 협의체로 SK이노베이션, 삼성전자, 애플, 테슬라 등이 회원사로 속해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전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업체인 ‘글렌코어(Glencore)’와 파트너십을 맺어 OEM*** 전기차(EV) 제조사와 대중 모두에게 투명성을 강화해 광물 생산업체가 보다 책임감 있고 개선된 공급망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 책임 있는 광물 조달을 위한 협의체 (Responsible Minerals Initiative, RMI) : 배터리 원재료와 분쟁광물 원산지를 추적하고 생산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글로벌 협의체

(***) OEM : 우리나라가 해외의 국제적 브랜드를 가진 대기업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생산 방식으로, ‘주문자위탁생산또는주문자상표부착생산이라 한다.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주문업체에서 생산성을 가진 제조업체에 자사에서 요구하는 상품을 제조하도록 위탁하여 완성된 상품을 주문자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을 취한다. – 출처 :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이처럼 배터리 여권은 기록 보존을 통한 투명성 제고 및 배터리 생애주기 추적을 가능하게 한다.

 

다음으로, 지정학 측면에서도 배터리 여권은 의의가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지정학적 긴장 상태가 고조된 세계정세에서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광물 정제 및 전지 생산의 막대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몇 나라들은 주요 품목 공급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미국 연방 정부는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에서 배터리 공급망 다각화 필요성을 밝혔고, 적절한 배터리 공급망 조달처를 명시하기도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 : 미국 내 급등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으로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 신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를 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참고 – 시사상식사전

 

IRA는 크게 두 가지를 골자로 한다.

 

첫 번째로 ‘친환경 차량(Clean Vehicle)이 7,500달러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북미 지역(미국, 캐나다 또는 멕시코) 내에서 최종 조립 공정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이보다 더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이 존재한다.

 

이 법의 두 번째 핵심은 배터리 분야의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함으로 전기차(EV)가 7,500달러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할 배터리 생산 관련 사항 2가지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1) 배터리 재료 및 광물은 북미 또는 미국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 체결국으로부터 일정 비율 이상을 조달 받아야 하며, 그 비율은 2023년 40%를 시작으로 2026년 80%까지 상향된다. 2025년부터 ‘해외 우려 국가(foreign entities of concern)’에서 공급받은 배터리 광물이 사용된 차량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없다.

2) 전기차 배터리 부품은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되어야 하며, 그 비율은 2023년 50%를 시작으로 2028년 100%까지 상향된다.

 

이 같은 IRA법안의 요구사항들은 두 가지 결과를 예상케 한다.

1) 북미 內 배터리 셀 및 배터리 팩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장려

2) 미국 자유무역협정(FTA) 국가의 배터리 공급망 생산 증대 지원

 

이와 같이 유럽과 미국은 그들의 관심사와 법률 시행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데이터 보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이는 ‘배터리 여권’의 발상의 근원이 되었다.

 

▲ 글로벌 배터리 얼라이언스(Global Battery Alliance)가 도입한 배터리 여권 개념(출처: 글로벌 배터리 얼라이언스 유튜브 채널 : https://youtu.be/-9xHRXSAN9I)

 

기술적으로는 이미 대다수 OEM자동차사 자체적으로 배터리 생산 공장부터 완성차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배터리를 테스트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추적하고 있다. 이 데이터에 따라 차량 내 배터리 성능, 안정성, 수명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배터리 셀을 그룹화해야 할 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터리 여권은 셀 수준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고 한번 차량이나 다른 곳에서 사용될 경우 그 효력이 상실된다.

 

앞서 언급한 이점을 적용하기 위해 배터리 여권은 핵심 광물이 채굴되는 장소 및 시점에서부터 데이터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하고, 배터리가 수명을 다하더라도 추적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수명을 다해가는 배터리들은 3Rs라 불리는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 재조립(remanufacture)’을 통해 재탄생할 수 있다. 그리드 저장장치*****와 같은 비교적 덜 복잡한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으로 용도 변경하여 새로이 사용할 수도 있고 일부 구성품을 교체해 개조하거나 아니면 아예 재활용할 수도 있다.

(*****)그리드 저장 장치 : 대형 중앙 제어 시스템 없이 가용 저장 용량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있도록 다중 시스템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저장 장치를 운용 관리하기 위한 모델. – 출처 : IT용어사전

 

흥미롭게도 EU에서는 이미 2030년부터 새로 생산되는 배터리는 코발트 16%, 납 85% 그리고 리튬과 니켈은 각각 6% 재생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재활용률을 규정했다.

 

이와 같은 모든 응용 사례에서도 배터리 내 광물이 과거 다른 배터리에서 사용된 이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기록이 보존되어야 하고 또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배터리 얼라이언스(GBA)는 배터리 여권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GBA의 배터리 여권은 ‘배터리 밸류체인의 투명성(full value chain transparency)’을 추구하며, 소비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최종 사용자에게 데이터 제공(put the data in the hands of end users)’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GBA는 온실가스(Greenhouse Gas, GHG) 배출, 아동 노동, 인권 등에 대한 핵심 성과지표를 개발해 배터리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대치와 과정을 표준화했다.

 

또한, 배터리 여권은 OEM자동차 제조업체가 배터리 팩 최적화 결정 시 필요한 기술 데이터를 기록한 ‘품질 인증(quality seal)’을 포함하며, 국가별 추적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요구하는 원산지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궁극적인 GBA 배터리 여권의 목표는 윤리적이고 원칙을 준수하며 투명한 배터리 공급망을 조성하는 것이며, 이는 원유, 가스, 수소와 같은 다른 에너지 시스템에 도입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정부는 배터리 여권을 통해 재생 에너지 전환을 위한 현명한 결정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국제정책 수립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어 보다 안전하고, 깨끗하며 윤리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큰 도약이 될 것이다.

 

관련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