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발전을 이끌어낸 주역이자, 기후변화위기를 가져온 존재라고 칭해지는 ‘블랙 골드(Black Gold)’, 석유. 그 양면성을 지닌 석유의 본모습을 파헤쳐 본다.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TV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가? 한반도를 뛰어다니는 공룡들의 생생한 모습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던 이 3부작은 2008년 방영 당시 EBS가 만든 역대 다큐멘터리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실제 한반도에 살았을 것이라 추정하는 공룡들을 보다 보면, 공룡이 죽으면 그 사체가 퇴적해 석유가 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석유는 화석연료(fossil fuels)의 일종이니, 공룡화석이 곧 석유가 된다는 내용은 꽤나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분명 이상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는 왜 석유가 나오지 않는 거지?!
공룡이 석유가 됐다는 얘기, 진짜일까? 만약 공룡이 정말 석유가 된다면 한반도의 수많은 공룡은 왜 석유를 남기지 않은 걸까?
공룡화석이 석유로 변했다는 가설은, 중생대 지층에서 석유가 주로 발견됐다는 사실이나 유기체와 탄화수소와의 연관성 등에 힘입어 꽤 오랜 기간 지지를 받았다. 1900년대 미국의 유명 석유회사가 공룡 캐릭터인 기업 로고 등을 앞세워 마케팅에 활용한 것도 한몫했다.
현재 학계에서 다뤄지는 석유 생성 기원설은 동식물이 죽은 뒤 산소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퇴적층이 만들어진 후 고온/고압을 받아 생겨났다는 ‘유기기원설’과 지구 내부의 금속 탄화물 등이 지구의 열과 압력에 반응해 만들어졌다는 ‘무기기원설’, 그리고 스스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 등으로 나뉜다.
이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유기기원설’이다. 해양 생물이 죽어 물아래로 가라앉으면, 공기와 차단된 상태로 퇴적물과 함께 땅 속에 묻히게 되는데, 이때 오랜 시간에 걸쳐 높은 온도 및 압력을 받아 석유가 된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보통 공룡을 비롯한 육상동물의 사체는 쉽게 공기에 노출되고 부패된다. 육상에서 살아가던 공룡들이 죽자마자 산소와 차단된 채 지하로 묻히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룡화석이 곧 석유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만큼 석유가 풍부한 중동지역은 중생대 당시 바다였다. 바다에 번식하던 수많은 플랑크톤, 미생물 등 해양생물이 죽으면 산소가 거의 없는 깊은 해저에 가라앉는다. 그 위로 오랜 시간에 걸쳐 유기물이 쌓이고 겹쳐지며 온도와 압력의 영향을 받아 석유가 생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유기물의 단백질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분인 질소나 황 등이 석유 속에 함유돼 있다는 점 역시 유기기원설을 뒷받침해 준다. 만약 무기기원설이나 자연발생설이 맞다면, 석유는 생물의 잔해로 형성된 에너지 자원인 ‘화석연료’ 범주에서 제외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기원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지 언정 석유가 인류의 오늘날을 만들어 낸 가장 큰 견인차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동수단의 연료이자 발전소나 제철소를 움직이게 하는 열 에너지의 공급원이기도 한 석유는, 전통부터 첨단까지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원료제공자로서 자리매김해왔다.
이처럼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일상 영역에서 석유를 활용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석유 무자원 국가다. 그러나 그동안 쌓였던 공룡의 억울함을 이제는 풀어줘야만 한다. 공룡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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