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소유주라면 전기차 관련 질문의 90%를 차지하는 다음 세 개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 가격이 얼마인가?
2) 주행 거리가 어떻게 되는가?
3) 충전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가?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일화 같은 게 아니며, 비전 모빌리티(Vision Mobility)에서 매년 LEK Consulting 및 CuriosityCX와 함께 실시하는 연례 글로벌 모빌리티 연구(Annual Global Mobility Study)의 핵심 이슈로 확인한 내용이다.
전기차 충전과 주행거리 관련 질문은 날씨, 운전 습관, 주행 속도, 충전기 유형, 차량 종류 및 기타 요인 등에 의해 간단히 답할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그나마 확실한 것은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런 점을 핵심 요인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테슬라(Tesla)는 일찍이 고객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전기차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고 빠른 충전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소비자들이 내연기관 차량을 이용할 때와 다를 바 없이 전기차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잠재 구매자)의 불안을 없애려면 충전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이해했다.
실제로 200마일(약 321km)이 넘는 거리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운전자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전기차 소유자들이 집에서 충전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매년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먼 거리를 이동하게 마련이다. 소비자들은 불편했던 때는 오래 기억하지만 문제없이 지나가는 경우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에는 제품을 사용하는 중에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최소한의 기대사항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비록 정기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원활한 급속충전은 모든 새로운 전기차에 대해 고객이 기대하는 점이며, 이는 급속충전의 추가적 개발에 중요한 이유가 된다.
테슬라에선 이러한 역학 관계로 인해 전기차에 안정적인 고속 충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최대 250kW(킬로와트)로 충전하더라도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을 혁신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능을 갖춘 배터리를 설계했다. SK이노베이션(SK온)의 차세대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탑재한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의 EV6 등의 신형 전기차 모델은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350kW 충전기로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18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직류 급속충전(DCFC)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만큼이나 차량과 배터리를 급속충전에 맞게 최적화하는 것 역시 필수적인 일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심각한 배터리 성능 저하가 나타나 배터리 교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또한 소비자가 우려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OEM업체들과 배터리 제조기업이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배터리 셀 설계 및 화학 구조
배터리 설계자는 충전 속도, 수명, 에너지 밀도, 안전성, 비용 및 제조 용이성을 비롯한 여러 핵심 성능 지표와 셀 개발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전통적으로 급속 충전은 ‘도금(plating)’으로 알려진 프로세스로 인해 배터리 수명이 단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튬이온이 견딜 수 없는 속도로 충전되면 흑연 코어에 제대로 삽입되지 않고 음극 외부가 도금돼 결국 배터리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
배터리 설계자는 배터리 성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도금을 줄이고 화학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도전을 받아왔다.
2) 배터리 팩 하드웨어
하드웨어는 배터리 셀이 최적의 성능을 발휘해 항상 적절한 온도로 유지될 수 있게, 신속한 예열과 냉각이 용이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배터리 팩이 공기 냉각(공랭식) 시스템에서 액체 냉각 시스템으로 전환돼 열 방출 및 예열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적절하게 설계한다면 이 기능은 배터리 수명을 연장하고 성능 저하 속도를 낮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화재를 유발하는 열 폭주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3)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소프트웨어
급속충전을 위해 배터리를 최적화하는 데는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소프트웨어 설계가 필수적이다. 적절한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배터리 셀 및 팩 설계를 적절한 제어 소프트웨어와 일치시키는 것은 높은 안전성과 오랜 수명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다. 시스템은 충전에 앞서 배터리 상태를 알고 언제 어떤 단계를 취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충전 중에 배터리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시스템을 주변 온도에 맞춰 최적화해야 한다.
세심하게 프로그래밍 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어떤 순간에도 차량을 완전하게 제어할 수 있으므로,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조기에 식별하고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혁신 가운데 하나는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이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에서 주기적으로 하는 업데이트와 유사하다. 소프트웨어가 개선될 때마다 업데이트를 통해 배터리를 더욱 최적화해 성능과 수명을 연장하고, 안전 버퍼(safety buffers)를 개선할 수 있다.
전기차 이용이 확대되고 신제품이 계속 출시됨에 따라, 급속충전 시 배터리 최적화 방안 확보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기회의 영역 중 하나는 대형 픽업 차량의 견인 기능이다. 견인은 일반 운행보다 에너지 사용량이 2~3배 증가하므로, 대형 픽업 차량의 충전을 위해선 더 자주 운행을 멈춰야 한다. 따라서 배터리는 이러한 높은 전력 및 충전 수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포드(Ford)의 F-150 라이트닝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했다. 또한, 차량 기능 중 하나인 ‘적재’(Haul) 모드는 배터리를 포함한 전체 전력구동부(electric drivetrain)를 최적화함으로써 요구 조건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다.
집에서 편리하게 충전할 수 있는 수단(충전기)을 갖추지 못한 전기차 소유주들, 즉 ‘충전 난민(Garage orphans)’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이 또 하나의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정기적인 급속 충전을 할 수 있다면 이 고객들은 전기차를 내연기관 차량과 별다르지 않게 이용 가능하다. 이는 충전이 더욱 편리해짐과 동시에 대기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배터리 기술은 정기적인 급속충전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여 전기차 보급률이 올라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결론은, 전기차를 보유하는 데 있어 급속충전은 필수적이라는 것과 급속충전에 대한 추가적인 개발은 새로운 전기차 이용 사례를 창출하며 시장 침투율을 높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수명 연장은 물론 무엇보다도 탁월한 안전성 유지를 위해, OEM 업체들과 지속적으로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는 핵심 분야이자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개발은 전기차에 대한 모든 오해를 불식시키고, 내연기관차량 이용 비중을 더욱 빠르게 줄여 공기질을 개선하며,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