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5일, 봄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강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 오후 봉사활동을 위해 오전 내내 바쁘게 일한 SK에너지 아우름 봉사단 소속 임직원들은 점심을 두둑이 먹고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본사 앞에 모여 출발하였습니다.
차들로 꽉 막힌 시내에 여느 때처럼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꽉 막힌 사무실에서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랜만에 땀 흘릴 생각에 마치 봄나들이 나가는 마냥 설레는 임직원들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서울숲으로 향하였습니다.
하루 중 햇볕이 가장 뜨겁다는 오후 2시, 서울숲 방문자센터 앞에 SK 행복날개가 박힌 주황빛 조끼를 입은 임직원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정장이 아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서로의 모습에 멋쩍어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 임직원들은 환한 미소를 가진 박양미 코디네이터의 친절한 설명을 들은 후, 밀짚모자와 낫 하나씩 챙겨 “진달래 동산 잡초제거”를 위해 출발하였습니다.
서울숲 방문자센터에서 진달래 동산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평일 오후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아주머니들, 때 이른 반바지를 입고 조깅을 하는 청년,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커플,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가족, 소풍 나온 아이들 무리까지, 고요한 공원이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걷고 뛰고 휴식을 하는 공간, 누구나 들어와 어우러질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도심 속 공원은 이렇게 행복하고 소중한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분가량 걸었을 때, 드디어 응봉산을 마주하고 자리 잡은 진달래 동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진달래 동산은 서울숲이 조성될 때 임의로 만든 언덕입니다. 서울숲이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흙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제법 큰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동산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큰 나무들과 무성하게 번식하는 잡초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관목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서울숲 사랑모임에서는, 봄이면 산 전체가 온통 노란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응봉산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에 분홍 진달래가 피면 멋지겠다고 생각하여, 지난해부터 진달래를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피는 진달래가 지고 나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잎과 꽃이 같이 피는 철쭉도 함께 심었습니다.
SK에너지 아우름 봉사단 임직원들은 지난 4월 봉사활동 때 심어놓은 진달래와 철쭉들이 아무 탈 없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 뿌듯해하며, 그 뒤로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잡초제거 봉사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잡초는 본래 이 땅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동안 땅이 건강해지는데 도움을 준 이 생명력 강한 풀들은 자연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손에 무참하게 뽑혀나갈 잡초의 운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임의로 심어진 진달래와 철쭉 관목들은 비바람 속에서 강인하게 자라난 잡초와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관목들이 이 땅에 자리 잡을 동안만 보호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하다 보니 잡초를 제거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숲 내 관목이 심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는 잡초를 무리하게 제거하지는 않습니다.
잡초제거의 정석은 낫을 이용해 땅을 살살 파고 들어가 뿌리째 뽑는 것이지만,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땅 위로 자란 부분만이라도 제거해줘도 관목이 자라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응봉산의 노란 개나리꽃만큼이나 아름답게 피어날 진달래를 상상하며, 밀짚모자에 낫을 든 임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작업 초반에는 동산에 풀 한 포기 남기지 않을 기세로 열심히 잡초를 뽑기 시작합니다. 옆 사람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경쟁이 붙은 듯 잡초를 제거하는 모습에 지켜보던 박양미 코디네이터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옷은 흙 범벅이 되어 가지만, 오랜만에 맡아보는 흙내음 풀향기에 아직까진 몸이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에 온몸으로 잡초와 씨름하다 보면, 팔도 쑤시고 다리에 힘도 풀리고 점점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땐 옆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잡초 사이에 숨겨진 꽃 구경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풀 이름도 물어가면서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래도 지쳐 틈틈이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펼 때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점점 사라지고 동산이 깨끗한 모습을 되찾아가는 걸 보면서, 힘을 내고 또 내어 마지막 남은 땀 한 방울까지 불태우겠다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드디어 기나긴 잡초와의 사투가 끝나고 나니, 처음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말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잡초가 무성하던 자리에 진달래와 철쭉 관목들이 활짝 빛나며 제 모습을 뽐내는 것을 보니 이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작업을 정리하고 모두 다 함께 모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동산을 바라보았는데, 왜 다들 자리를 떠나질 않나 하고 주위를 바라보니 다들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의 성과물은 그 사진 한 장에 담길지 모르지만, 노동이 안겨준 기쁨과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담겨 다음 달에 다시 서울숲을 찾아왔을 땐 더욱 커져 있겠지요. 일 년 중 몇 번에 불과한 봉사활동이지만 직접 흙을 밟고 풀을 만지면서 자연과 소통하며 진정한 숲 체험을 하였으니까요.
숲은 조성하는 것보다 가꾸고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서울숲을 지키기 위해 뒤에서 후원하고 봉사기업으로 참여하는 SK에너지와 같은 기업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열정과 재능을 공원을 위해 기부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땀방울이 있기에 도시의 숲은 더욱 찬란하게 빛이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울숲이 탄생한 지 8년째, 아직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의 도시공원이지만, 지금처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함께 숨 쉬는 깨어있는 공간일 수 있다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무르익어 진정한 숲으로 완성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