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를 얻는 tvN <삼시세끼>는 여러가지 매력이 많은 프로그램입니다. 심심한 듯, 무덤한 듯 한 그 프로그램에 넋놓고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로 ‘맛’을 빼놓을 수 없을겁니다. 현란한 조리 테크닉이나 화려한 데코레이션은 없지만 오랜 세월 우직하게 해 온 집밥의 건강하고 깊은 맛, 게다가 외모에서 요리를 좀체 상상할 수 없는 배우 차승원이 휘뚜루마뚜루 음식을 해내는 것을 보며 깊은 밤 군침을 삼키는 분들이 한둘이 아닐 듯 합니다. 저 역시 차승원씨가 고추기름에 슥슥 야채를 볶아 짬뽕 국물을 내는 것을 보고 그만 그 밤에 중국집 전화번호를 누르고야 말았습니다. 굳이 자극적인 양념이나 조리 기술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청정한 바다에서 건져 올린 자연의 재료는 그 자체로 산해진미가 됩니다. 최근 몇년새 특히 먹방이 유행하면서 그 깊이와 결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먹방은 예전부터 꾸준히 사랑받아온 소재입니다. 최근 몇년새 그 빈도와 종류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식욕이라는 원초적 욕구 앞에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유혹보다 강렬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 영상콘텐츠가 예전부터 음식에 주목해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간 많은 영화에서도 음식이 소재로 사용됐습니다. 소통과 사랑의 매개체로, 혹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담은 장치로, 또는 극중의 주요한 주인공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사방에서 강한 먹방의 유혹이 넘실대는 요즘, 식욕을 팍팍 자극했던 추억의 영화들을 말입니다.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침이 고이고 견디기 힘든 자극에 괴로웠던, 일명 ‘푸드 포르노’ 영화들. 이번 설 연휴에 다시금 맛봐야겠습니다.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된 사랑은 없다”고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던가요.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아니 하루에도 몇번씩 배가 고플 때마다 이 말은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습니다.
현재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아메리칸 셰프>가 있습니다.
본 사람들마다 앞다퉈 ‘진정한 푸드 포르노’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수익에만 관심 있는 고급 레스토랑 사장과 마찰을 빚고 그만둔 뒤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셰프 칼 캐스퍼의 유쾌한 이야기입니다. 파인 다이닝을 지휘하던 셰프가 레스토랑을 떠나 자신의 요리 철학을 투영하는 대상은 푸드트럭입니다. 이 푸드트럭에서 그는 쿠바식 샌드위치를 만들며 화면을 뒤흔들어 놓지요. 뉴올리언즈의 포보이, 카페 드 몽드의 명물 비녜, 텍사스식 오리지널 바베큐 등 엄청난 칼로리의 음식들이 침샘을 자극합니다.
먹방이니 식신이니 하는 말이 지금은 보편화 됐습니다. 특히 엄청나게 먹어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언제부턴가 식신이라는 말이 사용됐는데 사실 1995년 주성치의 영화 <식신>에서 이 말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여기선 엄청나게 먹어대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의 신이라는 개념이긴 하지요. 사실 주방의 세계를 보면 무술의 세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으신가요.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특정한 기술을 연마한다는 것이 외형적으로 비슷한데다 인간과 세계, 우주만물의 이치가 빚어내는 결과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식신>은 화려한 중국요리에 만화적 판타지가 더해진 코믹한 영화입니다. 장국영이 주연인 <금옥만당> 역시 빼놓을 수 없지요.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엄청납니다. 선악의 양분 구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홍콩영화 플롯을 따르고 있는 유쾌한 작품이지요. 만한전석이라는 어마어마한 중국요리를 다룬 모습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죠. 중국 각지의 산해진미가 만들어지고 차려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 쇼입니다. 세계 미식무대에서 중국과 함께 빠질 수 없는 요리라면 바로 프랑스 요리일 겁니다. <레옹>의 킬러였던 장 르노가 셰프로 변신한 영화 <셰프>는 프랑스 요리의 진수를 볼 수 있습니다. 천재 요리사들이 펼치는 요리 대결도 흥미진진하고 분자요리 등 생소한 미식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인도 청년이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레시피> 역시 눈과 입이 괴롭습니다. 온갖 진귀한 식재료들과 입이 떡떡 벌어지는 요리들이 화면을 한가득 채우고 보는 사람들의 넋을 빼놓거든요. 여기에 제목처럼 로맨틱한 사랑까지 더해져 기분 좋은 뒷맛까지 남겨줍니다.
요리에 관한한 일본음식도 둘째가라면 서러울지 모릅니다. <스시장인 지로의 꿈>은 스시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한번쯤 꼭 보시길 권합니다. 자신이 만드는 요리를 대하는 진지함과 숭고한 정신 앞에서 절로 숙연해집니다. 한결같은 마음과 자세로 스시를 만드는 장인의 정신이 돋보이지요. 게다가 스시에 사용되는 각종 생선이 갖는 고유의 성격과 맛에 대한 장인의 설명은 지적욕구까지도 채워줍니다.
<남극의 셰프>는 고립된 남극 기지에서 1년 넘게 머무르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가볍고 재미있게 그린 영화입니다. 남극판 삼시세끼라고 하면 좋을 법한 작품이지요.
실제로 남극기지에서 요리사로 머물렀던 니시무라 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영하 50도의 혹한과 햇빛도 들지 않는 고립된 남극에서 대원들에겐 음식만이 위로이고 유희이고 희망이고 동력입니다. 일본의 평범한 가정식, 라멘, 닭새우튀김, 푸아그라 요리 등 담백하고 맛깔난 요리들은 대원들을 울리고 웃기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얼마전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는 쉴 새 없이 몸을 놀려 곡식을 키우고 음식을 만들며 자급자족하는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 영화입니다.
그러고보니 한국 영화 중에서는 딱히 이야기할만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네요. 아쉽습니다. 대신 요즘 인기 절정의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분들의 마음을 달래줄만한 책으로 소설가 한창훈씨의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