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SK온은_다_계획이_있었다 #글로벌_공장_4곳_완공의_계획
코로나19 팬데믹 원년으로 기록된 2020년은 SK온에게 특히 중요한 해였다. 6월에는 중국 후이저우 공장, 8월에는 코마롬 2공장, 11월에는 미국 조지아 1공장, 12월에는 중국 옌청 공장까지, 4개국의 글로벌 공장 완공 스케줄이 줄줄이 잡혀 있었다. ‘완공’이라는 의미에는 시운전은 물론 생산한 시제품의 고객 인증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야말로 사활이 담긴 중요한 미션이었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번져갈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2020년 초, SK온 글로벌 공장의 임원과 PL들은 공장 건설과 가동을 준비하기 위해 워크숍을 가졌다. SK온은 이미 2019년에 첫 번째 헝가리 공장인 코마롬 1공장과 중국 창저우 공장(BEST JV)을 성공적으로 완공하여 시운전 일정까지 맞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해당 워크숍은 2020년 새로운 공장을 준비하는 타 사이트의 법인장과 제조팀장에게 성공 경험과 사례를 공유하기 위한 자리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SK온은 이미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눈치채고 있었다. 열띤 토론이 오가던 1박 2일간의 워크숍에서 이세욱 중국 BEST JV 법인장이 ‘현재 중국 상황이 심상치 않으며 BEST가 위치한 중국 창저우까지 통제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던 것! 3년 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가히 대단한 통찰이었다.
SK온의 제조 워크숍은 코로나19 국내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즈음에 진행되었다. 이후 뉴스에서도 질병 관련 보도를 대대적으로 이어가기 시작했다. 헝가리와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사이트의 리더들은 서둘러 각국으로 출국했고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20년 2월,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전 세계에서도 코로나19가 일파만파 퍼지며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하자, 3월 11일 WHO가 공식적으로 글로벌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후로 전 세계 여러 국가가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국경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갔고, 각국 내에서도 락다운(Lock-down)을 실행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국내와 해외를 연결하던 대부분의 항공편 역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_우리는_사람들을_헝가리로_보내야_하고 #아무래도_미션_임파서블
이로 인해 공사 일정에 관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헝가리 코마롬 2공장이었다. 일정 단축은 고사하고 공사 기간이 늘어나게 생긴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객과의 샘플 일정 준수를 위해서는 국내에서 배관과 전기 등 공사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이 대규모로 급파돼야만 했다. 또 설계된 공장이 현지 법규에 맞게 시공됐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당시 헝가리 코마롬2공장은 생산 설비가 입고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설비 세팅도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구체적인 방역 지침이 없어 일단 확진자가 발생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격리가 이뤄졌고, 대응할 수 있는 약품도 타이레놀 등 일부 뿐이었다. 얼마나 격리해야 안전할지 알 수 없었고 유전자 증폭(PCR) 검사가 생소하던 때라 정부에서도 국립의료원 중심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전 세계가 난생처음 마주친 바이러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국경을 넘는 일은 더더욱 힘겨운 일이었다.
이런 때에 한국 정부와 헝가리 정부, 이후에는 중국 정부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설득해 국경을 뚫고 대규모의 인력을 보낸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였다. 공항도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상황에서 전세기는 어떻게 구할 것이며, 정부 방역 지침도 명확하지 않은 때에 감염 관리는 또 어떻게 할지도 문제였다. 코로나19가 막 시작된 2020년에 해외로 일할 사람들을 보낸다는 것은 산 넘어 산 정도가 아니라, 산 넘으니 에베레스트가 나오는 수준의 ‘미션 임파서블’급 과제였다.
#설득의_결정판 #코시국에_국경_뚫고_인력_보내기
상황이 쉽지 않다고 해서 사활이 걸린 미션 앞에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터. 우선 산업자원부 설득 작전에 돌입했다. 이후 산업자원부를 통해 보건복지부와 외교부로 공문을 발송했는데, ‘이차 전지 산업 발전을 위해 전 세계에 인력을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에 하나 확진자 발생 시 이미 비행기에 탑승한 인력이라도, 접촉했던 모든 인원이 다 출국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서야 보건복지부를 설득할 수 있었다.
헝가리 쪽에서는 이미 공사 일정을 챙기던 담당자가 헝가리 정부 투자청(HIPA) 설득에 돌입했다. 당시 하나의 유럽을 표방하는 EU조차 국경 통제를 할 때였음에도 헝가리 정부는 SK온의 열정적이고 끈질긴 설득 끝에 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만 예외적으로 입국을 허가해 줬다.
“헝가리 투자청 담당자와 협의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을 입국 시키지 못하면 고객에게 클레임을 받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투자하기로 한 모든 일정이 다 무너지고 자연히 고용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설득했습니다. 사실이기도 했지만 절박한 마음이었죠.” (SK E&S 수소 Global Group류해권 담당 / 당시 SK이노베이션 유럽/아시아 건설사업 Unit 소속)
헝가리 정부로부터 ‘전세기를 띄울 수 있다면 한국 인력의 입국을 허가하겠다’는 약속을 받자마자 국내에서는 전세기 준비를 위한 모든 활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세기를 구하는 일부터 사람들을 태워 보내는 일까지, 모든 길목 길목이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과정들로 남아 있었다.
“초창기에는 SK아카데미 등 구성원들의 격리 장소를 제공해 주시는 분들을 설득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확진자 한 명만 나와도 장소 전체가 폐쇄되는 상황이라 걱정이 많으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여러 가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함께 검토하고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고서야 결국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SK온 SHE기술지원 Unit 유정희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생산지원 Unit PM)
#코드명_007작전 #WANTED #전세기_타고_출장_가실_분_구함
SK온이 섭외한 전세기가 공항 활주로로 이륙하기 전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이 과정에서도 만만치 않은 일들이 산적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출장 인력 확보였다. 코로나19 초기에는 특히 유럽 내 사망자 수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포가 극에 달해 있었다. 게다가 언어도, 환경도 낯선 해외에서 확진이 되거나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리스크였다. SK온 내외부를 막론하고 해외 출장자를 모집하는 것부터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원래 전세기에 탑승하려고 했던 인원 중 약 10% 정도는 출국하지 않는, 이른바 ‘출장 노쇼(No-show)’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개인의 안전할 권리 또한 중요하기에 이들을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출장자 명단이 확정된 후, 우선 해당 인원들을 4일간 격리했다. 당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 증상이 발현될 때까지 약 4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였다. 이후 산업자원부에 출장자 명단을 제출해 보건복지부에 검사 요청 공문을 송부하면, 보건복지부에서 우선하여 진단키트를 확보해 검사 인원 및 병원을 지정했다. 이후 SK온 준비팀은 언제, 몇 명을, 어느 병원으로 보내라는 ‘지령’을 보냈다. 이후 출장자들은 편성된 조에 따라 버스를 타고, 일반 내원 환자들이 모두 검사를 마친 시점에 병원에 도착해 별도의 격리된 경로를 통해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마치면 마찬가지로 격리된 루트를 통해 다시 SK아카데미나 SK브로드밴드 연수원으로 돌아와 1인 1실로 배정된 방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식사는 개별적으로 방에서 진행했고, 로비 등에서 다인원이 모이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준비팀은 전원 음성이라는 결과 확인 및 영문 음성 확인서 추가 발급 후, 헝가리 정부에 제출해 승인이 나면 전세기 일정에 맞춰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전세기 탑승 명단이 시작이었습니다. 지역별, 회사별로 코로나 검사 전날 아침에 전세 버스를 대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비롯해 모든 공간에서 접촉 및 감염이 발생하지 않게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인원들이 전국 각지의 숙소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는 것도 일이었지만, 식사부터 간식까지 준비해서 방마다 배달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네요. 다음 날 새벽 4시 출발이라 거의 잠을 못 자고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SK온 김자훈 이반차 제조관리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Global생산기획 PM)
“버스를 탔던 사람 중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그 버스가 통째로 못 가는 거거든요. 그게 가장 걱정이었는데, 버스 탑승자 전원 음성이라는 결과를 확인했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초조하게 계속 결과를 기다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를 영문으로 받는 작업까지, 유관부서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해주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SK온 SHE기술지원 Unit 유정희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생산지원 Unit PM)
#우리가_항공사는_아니지만 #직항_노선도_만들고 #착륙_허가도_받아주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일평생 전세기를 구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을 위해 SK온의 ‘전세기 구하기’ 과정을 속성으로 리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은 항공사에 문의했는데, 대당 5억 원에 이르는 전세기를 운용하는 일이다 보니 여행사에 탑승권 발권 업무를 의뢰했지만, 여행사는 SK온이 탑승객 개개인의 요금을 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곧 혹시 나중에 티켓 가격에 불만이 생기면 SK온에서 책임지라는 의미이기도 했는데, 비행기를 만석으로 채울 때 여행사에서 임의로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을 지정하기가 어려웠던 탓도 있었다. 이 문제는 결국 SK온 담당자가 비행기를 타고 갈 업체별로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할 10%의 탑승객 명단을 별도로 추려서 좌석까지 일일이 다 배치하고서야 일단락되었다.
그 이후에는 여행사와 항공사 사이의 조율도 맡아야 했다. 항공사는 여행사가 아니라 SK온을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것이므로, 세부적인 내용들을 SK온과 의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항공운항을 위한 조건들부터 계약서 세부 사항까지 모두 검토하는 과정이 뒤따랐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직항 노선이 없었기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헝가리로 가는 루트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전세기로 가는 길이니 굳이 환승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다! 덕분에 부다페스트까지 직항 노선을 ‘만들어서’ 가게 되었고, 심지어는 SK온 담당자가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항공사 담당자와 통화를 하며, 헝가리 현지의 착륙 허가 소식을 역으로 항공사에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니 전세기 띄우기가 그저 비용만 지불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코로나19 기간에 가장 뿌듯했던 기억은 역시 비행기가 무사히 뜨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전세기에 관련된 특별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탑승하신 분들이 약속했던 과정을 거쳐 숙소에 다 잘 도착했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SK온 글로벌 제조지원 손기철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Global생산기획 PL)
#왜_때문인지_코끝이_찡해요 #SK이노베이션_전세기로 #헝가리_교민_귀국
코로나19 초기, 꾹 닫힌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우리 국민들이 전세기를 타고 돌아온다는 뉴스 보도를 보면 괜히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SK온이 헝가리에 보냈던 전세기도 그렇게 헝가리의 우리 교민을 태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SK온은 글로벌 회사인 동시에 대한민국 기업인데, 교민 분들을 모시고 한국으로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헝가리 한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을 때 본사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본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지시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교민 분들을 태우고 들어오는 것으로 결정되었어요. 그야말로 모든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SK의 경영철학이 실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SK온 서산제조관리 Unit여수원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유럽법인 운영지원 Unit PL)
이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중 하나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교민 중 S사 직원도 있었다는 것인데, 당시 헝가리 수송에 관여했던 담당자들은 하나 같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 하는 것’이라며 ‘대인배’다운 행보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저희가 S사에서 헝가리로 들어가는 분들도 열 분 정도 태웠고요. 중국에 들어갈 때도 선전이나 우한 쪽으로 가시는 SK지오센트릭 구성원 분들이나, 가족 분들의 탑승까지도 도운 적이 있습니다. 헝가리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는 헝가리에 계신 S사 공장장님이 부탁하셨는데, 마침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자리가 어느 정도라고 말씀드리며 조정을 하기도 했어요.” (SK온 글로벌 제조지원 손기철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Global생산기획 PL)
#빨리빨리_DNA_없었다면_곤란할_뻔 #’어나더_레벨’의_중국_입국
헝가리 공장을 위해서 2020년 3월과 5월, 두 번의 전세기를 띄워 600여 명을 수송했지만, 중국 공장 건설을 위해서는 다분히 ‘중국답게’ 훨씬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 2020년 6월부터 12월까지 SK온이 중국으로 띄운 전세기는 12대였고, 탑승 인원은 총 1,000여 명이었다.
이미 헝가리로 두 대의 전세기를 띄운 경력과 경험이 있으니 중국은 좀 더 손쉽게 진행되었으리라 예상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중국은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더 철저하게 락다운을 시행했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이 시행되는 바람에 우한이 속한 시와 성의 간부들이 모두 해임되거나 교체되는 상황이었으니, 모든 지방 정부 담당자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숨죽여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인력들의 중국 입국 허가를 받아내는 것은 난관 그 자체였다. SK차이나와 이미 성공적으로 공장을 운영하며 지역에서 고용을 창출해 낸 BEST가 발 벗고 설득 작업에 나섰다. 강소성과 SK가 돈독한 동반자 관계임을 어필하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성 간부부터 시의 담당자까지 모두를 설득해 한국 구성원들의 입국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입국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룰루랄라’ 편안히 사람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출장자 명단과 비행 허가서를 제출할 때마다 번번히 반려된 탓에 주한 중국대사관과 직접 통화해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중국과의 관계나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중국 항공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항공비용을 모두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고, 한국에서 출장비 정산을 할 수 밖에 없는 운영적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비행 허가를 받은 후의 단계도 편안하지 않았다. 우선 출장자 명단을 취합해서 중국대사관에 보내고 최종 입국을 다시 확인 받아야 했다. 그 뒤로 우리나라 산업자원부 및 보건복지부에 연락해 다시 설득의 과정을 이어간 것은 물론, 보건복지부의 검사 병원 지정, 병원에서의 검사 시간 확인 및 확정, SK온 출장자들의 검사 후 음성 확인, 이후 영문 확인서를 수급해 공항으로 출발하는 등 숨가쁜 단계들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이 단 3일 만에 진행되어야 했다는 것! 중국 측에서 비행 승인 3일 전에야 연락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대환장_파티의_입국_절차를_거쳐 #또_2주_격리라고?
출장자들의 고생은 중국 입국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중국 당국의 기본적인 관점은 ‘사람은 모두 바이러스 보균의심자’라는 것이었다. 입국한 스태프들이 격리 후 검사를 통해 음성으로 확인되었음에도, 중국에 도착하여 2주 동안 추가로 격리해야 했고, 격리 해제 후 코로나19 검사도 세 번이나 더 받아야 했다.
SK온에서는 출장자들을 배려해 2주간 격리하는 숙소도 따로 준비했다. 중국에서는 2성급 호텔도 쾌적하지 않은 형편이라 객실이나 식사 모두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2주간을 격리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 3개 법인 전체가 나서 한국 출장자들이 나름대로 ‘쾌적한 격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숙소와 식사를 마련하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물론 격리 해제 이후 공장 건설 과정에서 버스 등 교통편이나 설비 구축을 위한 동선 등을 고려하는 것 또한 SK온 담당자들의 몫이었다.
이후로 매번 전세기를 띄워 인원을 보낼 때마다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중국 입국과 관련해 비정형화된 사건들이 많았던 탓이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연락이 오거나, 계속 바뀌는 방역 지침에 매뉴얼을 만들기도 어려웠고, 입국 정책도 수시로 변동됐다. 그럼에도 SK온은 무사히 한국의 인력들을 공장 건설 사이트로 보낼 수 있었고, 덕분에 중국 공장도 무사히 완공할 수 있었다.
#고객과의_약속은_소중하니까요 #빠르게_수율_잡는데_성공한_헝가리_코마롬_공장
이렇게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파란만장한 코로나19 수송기 덕분에 헝가리와 중국, 그리고 미국의 공장들까지 모두 무사히 완공되었고, 2023년 현재 모든 공장들이 쌩쌩 잘 돌아가는 중이다.
“저희가 한국 서산공장에서 작업하는 오퍼레이터, 테크니션 100여 명을 헝가리로 파견했습니다. 한국에서 생산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리드하다 보니 현지에서도 잘 따라와 주면서 빠르게 수율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이게 SK의 저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SK온 글로벌 제조지원 손기철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Global생산기획 PL)
2020년에 있었던 전세기 수송을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무슨 겁 없는 정면 돌파 진검승부인가 싶다. 그러나 구성원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모두에게서 한결같은 답이 돌아왔다. ‘고객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고.
SK온이 만드는 배터리는 전기차를 위한 이차 전지인데, 전기차는 통상 3년 전부터 개발과 납품 일정이 짜여있다. 공급 일정에 맞춰 개발하고 공급하는 조건으로 SK온이 수주한 프로젝트이므로 당연히 일정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미션이었다. 고객의 신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약속을 지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코마롬 1공장은 우리가 100% 지분 투자를 해서 해외로 나간 첫 사업이었거든요. 우리가 성공해 내지 못하면 시장이나, 고객, 또 국민들에게도 면목이 없는 거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약속된 시간에 제대로 된 제품을 약속한 물량만큼 만들어 내는 게 최대 과제였습니다.” (SK온 서산제조관리 Unit여수원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유럽법인 운영지원 Unit PL)
코로나19로 피치 못하게 조율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SK온의 모든 글로벌 공장에서는 코로나19를 이겨내며 고객사와 약속했던 일정들을 모두 지켜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 처음에는 ‘진짜 전세기를 띄울 수 있나? 가능할까?’ 생각했었는데 여러 구성원이 각자 맡은 일을 해내고, 기관들에서도 도와주고 하니 일이 점점 풀려나가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겪었습니다. 그래서 ‘되겠구나,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SK온 서산제조관리 Unit여수원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유럽법인 운영지원 Unit PL)
“코로나19 기간에 전 세계에서 공장을 짓고 운영하기 위한 노력들이 정부와의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내부 유관 조직간의 협력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전세기를 띄우고, 격리에 대응하고, 출입국 과정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이슈들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유관 조직 및 정부와의 협업이 체계화 되었고 점차 코로나19 이슈 대응이 아닌 공장 건설/운영 본연의 업무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코로나19 관련 기업 지원을 맡았던 담당 공무원이 ‘국내 다른 어떤 기업들보다 코로나19 위기를 잘 대처하는 기업인 것 같다.’ 라는 평가를 했었는데, 지금도 정말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SK온 CR unit 김동현 PL / 당시 SK이노베이션 Battery/소재 CR unit PL)
#코로나로_위기_대응_능력_점프_업! #잘_극복한_위기는_기업의_성장판이_된다
각 부문의 리더들이 꼽는 코로나19 경험의 순기능은 단연 위기에 대응하는 관리 역량이 높아진 것이다. 공장에서는 생산 인원에 결원이 생기면 라인이 멈춰 공장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헝가리 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해 생산 인원이 10~20%까지 빠졌을 때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더 중요한 라인을 먼저 가동하고 다른 라인은 부분 가동하거나 가동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는 ‘액션’의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또 중국 공장에서는 생산 인원의 40%가량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1주일간 격리하는 사건도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생산 인원이 나오지 못할 때도 가동률만 절반으로 떨어지고 정상 상태의 수율은 계속 유지되는 놀라운 경험도 했다. 코로나19로 빠졌던 인원들이 복귀하자 2주 만에 가동률과 수율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는 탄탄한 회복탄력성은 SK온의 공장 운영이 상당히 안정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결국 2020년은 SK온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라는 성장통을 겪은 해로 기록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SK온은 성장통을 잘 이겨냈고 덕분에 글로벌 이차 전지 분야에서 한층 커진 체구와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역량을 갖추게 됐다. SK온의 파란만장 글로벌 공장 건설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SK에게는 위기극복의 DNA가 있음을!
다음 편은 ‘We 9 프로젝트-위대한 구성원의 코로나19 극복기’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지면이 모자라 다루지 못했던 SK이노베이션 계열 구성원들의 사연들이 펼쳐진다. 마지막까지 많은 기대와 관심, 응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