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영웅들” - SK이노베이션 계열 구성원의 이야기
2024.12.20
#아직도_마스크를_쓰고_있습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의무적으로 써야 했던 마스크. 한동안은 마스크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때가 언제였더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애써도 쉽게 적응할 수 없었던 코로나19가 엔데믹(Endemic)에 도달한 듯 보이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는 스키노맨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들이다.
“실외, 실내 마스크 착용이 순차적으로 해제될 때에도 한동안은 계속 마스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SK인천석유화학 SHE∙Tech실에서 그동안 내보낸 코로나19 생활 방역 가이드를 보면 아시겠지만, 정부의 코로나19방역 완화 지침보다 시기가 다 조금씩 늦습니다.” (SK인천석유화학 ER 김기섭 PM)
SK인천석유화학 식구들이라고 해서 얼른 마스크를 벗고 동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께 식사하는 날을 기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게다가 정부의 방역 지침보다 소위 ‘빡세게’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예외 없이 깐깐한 규칙을 지켜야 했기에 더더욱 하루빨리 엔데믹을 맞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아직도 코로나19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지 않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멈출_수_없다 #우리가_무너지면 #국가_겹재난이다
43만 평에 달하는 SK인천석유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주요 축인 동시에 국가 핵심 기반시설로 분류되어 있다. 국가 핵심 기반시설이란 에너지, 정보통신, 교통·수송, 보건의료 등 국가 경제나 국민의 안전과 건강 및 정부의 핵심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로, 국가 핵심 기반시설의 마비는 곧 재난으로 분류된다.
그러니 SK인천석유화학이 멈춘다는 것은 곧 코로나19라는 사상초유의 재난 위에 또 다른 재난이 더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SK인천석유화학 스키노맨들이 철저한 자기 절제를 실천하고 방역 지침이 완화된 시점에도 ‘조금만 더 참기’를 다짐했던 이유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코로나19 방역도 사활을 걸고 단단하게 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접촉과 동선의 최소화를 위해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코로나19 시대의 해법은 이들에게 꼭 들어맞는 정답은 아니었다. SK인천석유화학처럼 공장 설비 안에서 생산이 이루어져야 하는 거대 장치산업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역_지침_커스터마이즈 #적극적_해석과_깐깐한_적용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19 이전과 마찬가지로 24시간 내내 공장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선 사수해야 하는 포인트는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조정실이었다. 조정실 내에서 근무하는 구성원이 확진되었다고 해서 조정실을 비울 수도 없고 조정실의 모든 구성원을 격리시킬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당장 공장이 멈출 것이 빤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면서도 석유화학 공장에 적합한 방역 방침이 필요했다. SK인천석유화학에 꼭 맞는 방역 지침을 확보하기 위해 스키노맨들은 무엇을 했을까?
방역 지침에 관해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서구청과 보건소까지 모든 관계 기관에 적극적으로 묻고 답하고 협의했다. 결국 열 명 정도의 인원이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공장의 심장, 조정실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조정실 내 외부인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모든 담당자가 방역복과 안전 보호구를 착용한 채 근무했다. 덕분에 확진자가 발생해 소독과 방역을 진행할 때도 조정실 근무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래도 #방역_물품_구하기는 #어렵다
모두가 마찬가지였지만 코로나19 초기에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 같은 방역 물품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매주 구성원들에게 마스크를 배부하고 일터 구석구석 손 소독제를 비치했던 SK인천석유화학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SK인천석유화학의 특수상황으로 인해 추가로 구해야 하는 방역 물품까지 있어 그 어려움은 배가 되었다.
SK인천석유화학은 방역기와 소독 약품을 추가로 구해야 했다. 본관이나 공장 등 사내에 유증상자가 생기면 그 즉시 건물 전체를 방역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외부 업체는 즉각 대처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최대한 방역기와 약품을 구입해 필요 시 자체적으로 소독하려 했지만, 당시는 방역 업체들조차도 방역 약품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때였다.
그때 한 구성원이 식당이나 주방 등의 해충 방제 업체에 문의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마침 문의를 넣은 해충 방제 업체 대표가 인천시의 방역과 관련한 중책을 맡고 있어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약품은 물론 소독 방역기까지 구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물품이 있다고 방역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들과 협력사 구성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통근버스와 식당, 카페처럼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매일매일 주기적으로 소독·방역했고 ‘확진자 혹은 접촉자 발생!’이라는 알람이 울리면 협력사 담당자들이 주중, 주말, 야간 상관없이 긴급 방역 활동을 펼쳤다.
“무더위에 방역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방역을 하던 협력회사 구성원들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SK인천석유화학 ER 정창호 부장)
▲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들이 방역기와 약품을 구비해 직접 실시간 방역을 진행했다.
#우리는_식량이_아니라 #구성원의_사기를_구한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코로나19로부터 구성원들을 지키던 그 때, 시험의 시간이 다가왔다. 바로 SK인천석유화학 구내식당 직원의 가족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것. 당시에는 확진자는 물론 가족까지 모두 격리하던 때였기 때문에 당연히 해당 직원 역시 격리되었으며, 함께 일하던 구내식당 구성원들도 모두 격리되어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급한 문제는 다음 식사였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 특성상, 구내식당 또한 1년 365일 24시간 움직여야 했다. 주간 근무자의 식사는 식당에서, 각자 현장을 지키는 교대 근무자는 이동 배식으로 식사를 해왔지만 당장 식사 제공이 불가능했다. 구내식당 주방 불이 꺼진 채 싸늘한 적막만이 감도는 상황, 현장에서 식사를 기다리는 구성원은 무려 350여 명이나 되었으니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이런 초유의 사태를 맞아 SK인천석유화학 ER 팀 구성원들은 근처 대형마트를 전부 돌며 전투 식량을 구입했고, 마트의 재고를 그야말로 ‘탈탈’ 털어왔다. 이들은 원래 구내식당 담당자가 아니기도 했고, 한정된 인원으로 제한 시간에 맞춰 43만 평이나 되는 공장 구석구석에 식사를 전달하기 위한 이동 동선을 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평소처럼 따끈하게 조리된 식사가 아닌 냉동 도시락, 말 그대로 전투 식량이다 보니 대형 보온통과 전자레인지를 곳곳에 배치해야 했다. 식사를 조달하며 전투식량을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구성원들을 위한 현장 시연까지! 스키노맨들의 할 일 목록은 길고도 길었다.
누군가는 ‘그까짓 밥 좀 못 먹는 게 대수냐’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장 주변에 이렇다 할 식당도 없거니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코로나 시국에 사외 식당 이용을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먹는 구성원들의 한 끼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사기의 문제였다.
#이번에_구해야_하는_것은 #비행기?!
코로나19 초기, 지역 내 집단 감염으로 국민들의 걱정과 두려움이 대한민국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지 오래지 않은 시점에 SK인천석유화학에는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닥쳐왔다. 공장 설비 중 PX(ParaXylene, 파라자일렌) 챔버에 이상이 생겨 수리가 필요했던 것! 평소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을 일이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라이선스를 가진 수리공들이 당시 전부 태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33명의 엔지니어가 태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초유의 공항 셧다운(Shutdown)으로 하늘길마저 막혀 있었다.
SK인천석유화학은 우선 정부와 대사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와 협의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태국 엔지니어들이 들어왔을 때 발생하게 될 격리 문제나 동선 이슈 등을 꼼꼼히 검토해 계획안을 제출하고, SK인천석유화학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약속한 후에야 양국 정부로부터 출입국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PX 챔버 수리는 무사히 마쳤으나 또다시 닥쳐온 다음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출국하는 비행기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제 담당자들에게는 비행기를 구해야 하는 특급 미션이 떨어졌다. 회사로서는 태국 엔지니어들이 한국에 오래 머무를수록 비용이 손실로 누적되는 상황이었기에, 전세기를 구하기로 하고 항공사들과 협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행기 탑승일 바로 전날 한 엔지니어가 여권을 잃어버리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부랴부랴 태국 대사관에서 다시 여권을 발급받는 등 준비를 마친 바로 그 순간! 희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에서 출발하는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경유해 태국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러 팀이 함께 소통하고 노력한 끝에 33명의 태국 엔지니어들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회사는 전세기 대신 기존 운항 항공 노선 확보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1년_6개월_후에야_나온 #첫_번째_확진자
SK인천석유화학의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것은 2021년 8월 3일이었다. 코로나19 시작 후 무려 1년 6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첫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은 일견 놀랄 만한 상황이었고, 그동안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들이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SK인천석유화학이 위치한 인천 지역에서는 이미 누적 확진자 수가 1만여 명 가까이 나온 후였다.
코로나19의 맹공격에 결코 그 누구도 피할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함과 동시에 그동안 준비해두었던 대응 프로세스가 착착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려 109명이나 되는 인원이 전원 퇴근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추가 확진자 없이 전원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잠복 기간을 고려해 인천 서구 보건소와 협력해 5명의 밀접 접촉자는 자가격리, 능동 감시자는 일주일간 재택근무 조치, 그 외의 인원은 다음 날부터 정상 출근을 할 수 있었다.
“SK인천석유화학이 전문 보건기관도 아니다 보니, 역학조사를 하고 접촉자를 분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확진자 발생에 대한 초기 대응을 잘 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구성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정직하고 빠르게 보고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SK인천석유화학 SHE기술·관리 Unit 양상규 기장)
#뭐니_뭐니_해도 #최고의_수훈은 #자기절제_갑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
“우리 사업장이 사회 평균에 비해 확진율이 낮고 또 확진자가 늦게 나온 이유는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들이 상황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거든요. 덕분에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벤치마킹도 할 수 있었고요. 그런 부분에서 우리 구성원들이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엄청나게 자기 절제와 자기 관리를 잘했다고 봅니다.” (SK인천석유화학 ER 김기섭 PM)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SK인천석유화학의 방역 기준은 높고 까다로웠다. 외부 출장은 당연히 최소화했고, 회사 내부 회의나 집합교육도 제한적이었다. 카페나 체육실처럼 여러 인원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역시 이용이 제한되었다.
구성원 개인은 물론 가족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역 방침에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들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묵묵하게 지침을 지켜주었다. 우리 구성원들의 노력과 마음은 백신 접종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날짜의 인천지역 백신 접종률과 비교했을 때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의 접종률은 10% 이상 높았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공장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성원들이 개인 생활이나 업무 수행의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위해 협조하고 또 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사에서 구성원 보호를 위한 격리 지원, 방역을 위한 자원 투입을 적극적으로 해 준 부분도 빼놓을 수 없겠죠.” (SK인천석유화학 SHE기술∙관리 unit 김양훈 PL)
구성원들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애쓸 수 있었던 것은 SK인천석유화학만의 끈끈한 동료애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심리적 부담이 컸던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SK인천석유화학 구성원들은 확진 동료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19 격리해제 후 다시 근무하러 나온 사람들과 만나면 다들 고생했다고 위로했어요. 그 누구라도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핀잔을 주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SK인천석유화학 ER 정창호 부장)
#뭐든_할_수_있다는 #자신감으로_바뀐 #코로나19의_기억
2020년 1월 20일부터 3년을 꼬박 채우고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SK인천석유화학이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낼 수 있었던 토대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구성원들의 사명감과 동료애가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미리 준비한 대응책이 있었으며, 구성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심한 회사의 지원이 있었다. 무엇보다 모두가 함께한 이번 경험은 공장에서의 일방혁(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어떤 위기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공고히 하는 기회가 되었다.
“제가 요즘 더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긴급한 일이 생길지라도 ‘이미 전투 식량도 구해봤고 비행기도 구해봤는데 뭘 못 하겠어’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코로나19라는 경험을 통해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렇게 바뀐 것 같아요.” (SK인천석유화학 ER 김기섭 PM)
“법정 전염병으로 인해, 공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어 중대한 위기가 닥쳤던 전대미문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구성원의 단합된 힘으로 극복해 냄으로써 SK인천석유화학의 강인한 DNA를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SK인천석유화학 SHE기술·관리 Unit김양훈 PL)
이어지는 ‘We 9 프로젝트’ 다음 편에서도 SK이노베이션 계열 구성원들의 슬기로운 코로나19 극복기가 펼쳐진다. 다음 편도 많은 기대와 관심 가져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