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기조가 계속되고 있지만, 석유수출국기구 (OPEC)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 사우디, “감산 합의하더라도 준수하는 국가 많지 않을 것”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지난 2월 23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IHS 세라위크 컨퍼런스에서 “감산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준수하는 국가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감산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급 균형과 관련해서는 고비용 생산자들의 생산이 감소하도록 유도하는 게 수급균형 회복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알 나이미 장관은 “생산 동결 합의는 유가 안정 조치의 시발점이며, 주요 국가들이 생산 동결에 합의한다면 석유 재고가 머지않아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사우디, 러시아, 카타르, 베네수엘라 석유장관들은 2월 16일 카타르 도하에서 비공식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1월 수준의 생산량 동결에 합의했지만, 이는 러시아 등 비(非) OPEC 주요국과 이란 등 OPEC 회원국의 동참을 전제로 한 조건부 합의였습니다.
■ 이란, “산유량 하루 평균 100만 배럴에 불과, 동결 불가”
반면 최근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은 사우디 등에 반발했습니다. 알 나이미 장관의 발언에 앞서 이란의 비잔 장게네 석유장관은 “사우디와 러시아는 하루에 1000만 배럴이 넘는 생산량 수준에서 산유량을 동결하면서 우리(이란)도 생산량을 동결해야 한다는 발언은 농담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란의 현재 하루 석유 생산량은 300만 배럴인데, 이란은 경제제재를 받기 전 수준인 400만 배럴까지 생산량이 확대돼야 생산량 동결을 고려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당일 두 사람의 발언 이후 국제유가는 4.6%나 하락했습니다.
원유 수출액이 재정수입의 막대한 양을 차지하는 사우디는 왜 ‘감산 불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란 등은 왜 반발하는 걸까요?
■ 사우디는 왜 감산 불가 주장을 굽히지 않을까?
일단 미국, 캐나다 등의 셰일오일 확장세를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기존 입장이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셰일오일 등 비전통 원유는 기존 전통원유보다 생산단가가 비쌉니다. 고유가 시절 기술혁신으로 셰일오일 개발붐이 일어서 지금의 저유가 기조를 만든 셈인데, 사우디 등이 인위적으로 감산할 게 아니라 기존 생산량을 유지한다면 수요-공급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장이 조정될 것이라는 게 사우디의 생각입니다. 특히 사우디는 저비용 원유 생산국인데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오르면 셰일오일 등 고비용 원유를 생산하는 국가나 업체가 이득을 보게 됩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주기’ 싫다는 입장 아닐까요?
실제 알 나이미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 등 서방 언론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우디가 감산을 거부하다”(뉴스 앤 월드리포트), “알 나이미가 살아나던 감산 기대를 짓밟았다”(마켓워치), “사우디가 미국에 던진 메시지: 비용을 낮추든, 원유시장을 떠나든 택일하라”(블룸버그), “사우디가 미국 셰일업체에 말한다: 너희들은 붕괴될 것이다”(포브스) 등입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겠죠?
정치적으로는 이란의 ‘부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우디의 감산으로 유가가 다시 오른다면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 역시 혜택을 볼 텐데요.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부활하는 시아파 국가 이란을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사우디가 저유가를 버틸만한 상황인지는 의문입니다. 세계 최대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저유가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기 싸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 참고자료
– 한겨레 2016년 2월 25일자 “사우디 ‘감산은 없다’…유가 큰 폭 하락”
– 이데일리 2016년 2월 25일 “[증시키워드]누가 사우디만을 탓하는가”
–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 도움말
손양훈 인천대 교수
[글 유희곤·경향신문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