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인천석유화학, 결식 아동 도시락 지원 7년째 이어져
2024.12.20
지난 1969년 경인에너지로 출발한 SK인천석유화학은 반세기를 인천과 함께 성장한 지역 대표 향토기업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회사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신뢰와 지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위한 여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K인천석유화학 임직원들은 지역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을 가질 때 지역 사회와 더욱 잘 소통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2017년부터 자발적으로 ‘인천 바로 알기’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 2017년 12월, ‘인천섬의 자연과 역사문화’를 주제로 인천 삼산고등학교 김기룡 교장 초청 특강을 들은 SK인천석유화학 임직원들
특히 올해 초에는 인천관광공사와 ‘인천지역 브랜드 제고 및 사회적 가치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지역 특화 콘텐츠 공동개발, 친환경 캠페인 추진, 양사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공유 등에 협력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SKinno News에서는 인천관광공사와의 제휴를 통해 인천의 역사, 문화, 명소 등 다양한 지역 콘텐츠를 공유하고 소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인천史 바로 알기, 인천의 독립 운동길을 소개한다.
| 3·1운동 100주년 기념 인천史 바로 알기 – 인천독립운동길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담은 인천의 독립운동길. 인천의 중구와 동구, 강화도 지역에 달하는 인천독립운동길을 통해 역사적 그날을 되새겨 보자.
■ 인천감리서터(인천옥)
▲ 인천감리서터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
인천감리서는 김구 선생이 1896년 치하포에서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일본 육군중위를 처단하고 투옥되었던 곳으로서, 현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 감리서는 개항장 내 최고 기관으로 내부에 감옥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2번에 걸쳐 투옥되었다.
■ 백범 탈출로 (홍예문-중국인묘지터-고유섭 생가-용동큰우물)
▲ 홍예문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3가 20)
백범일지에 쓰인 기록을 토대로 백범 김구 선생이 감리서에서 탈옥했던 길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홍예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만석동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편하고 빠르게 물건을 실어 나르고자 조선인들을 착취해서 지어졌다. 백범 탈출로는 이곳 홍예문을 거쳐 중국인묘지터(현재 119심폐소생센터), 고유섭 선생 생가, 용동큰우물에 이른다.
▲ 고유섭생가터 (인천광역시 중구 용동)
우현 고유섭 선생은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나눠주고 게양해 주는 등 독립운동에 주도적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한국 최초의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이다.
■ 창영초등학교
▲ 창영초등학교 (인천광역시 동구 우각로15번길 16)
창영초등학교는 인천에서 최초로 3·1 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당시 김명진 학생이 주도하여 학생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인천 중심가를 행진했고, 동맹 휴학에 들어가면서 인천의 본격적인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
▲ 용흥궁공원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1919년 탑골공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만세운동. 이에 동참하여 조국의 광복을 쟁취하고자 강화군민을 비롯한 2만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날을 되새기며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고자 1994년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웠고, 2011년 8월 용흥궁공원으로 이전했다.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성공회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336)
전통적인 조선 한옥 구조물에 서양 건축양식을 수용해 지은 것으로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로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근대화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일제강점기 전쟁물자 공출의 아픔을 겪은 곳으로 강화도의 독립운동 역사를 엿볼 수 있다.
■ 조봉암 선생 집터
▲ 조봉암생가터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조봉암 선생은 강화 출신으로 1919년 강화 3·1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강화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주동자로 체포되었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개월간 복역했다고 한다.
■ 구세의원
▲ 구세의원이 있었던 자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신문로 31번길)
구세의원은 일제 말기 세브란스 의전(현 연세대학교 의래)을 나온 권요한(권영환)이 설립하여 1960년대 말까지 운영했던 의료기관이다. ‘구세주’ 즉, 영혼을 구원하고 육신을 치료하는 의원이라는 뜻으로 ‘구세의원’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초가집이었던 의원의 건물은 1950년대 말까지 사용하다가 재건축했으며, 현재는 개인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 강화 중앙교회
▲ 강화중앙교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청하동길 36)
19세기 말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 계몽운동의 중심이 된 장소이다. 조봉암 선생, 김구 선생 등이 이 교회를 통해 민족교육 운동을 전개했다.
■ 강화평화전망대
▲ 강화평화전망대 (인천 강화군 양사면 전망대로 797)
2008년 평화통일 기원과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을 위해 지어진 강화평화전망대. 전망대에서 북한의 개풍군까지 최단 거리는 2.3km로, 북한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다.
지금까지 3·1운동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길을 소개했다. 인천의 독립운동길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해준 독립운동가분들을 마음속에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 상기 콘텐츠는 SK인천석유화학과 인천관광공사 간 업무협약에 따라 SKinno News와 인천관광공사 홈페이지에 동시 게재된 제휴 콘텐츠입니다.
* [참고] 인천관광공사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