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피사로(Camille Pissarro)가 남긴 말입니다. 피사로의 말처럼 ‘이 남자’는 시대를 앞서갔지만, 1890년 7월 27일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쏘아 불행했던 삶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고 맙니다. ‘이 남자’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빛을 갈구했던 불행한 천재 화가입니다.
반 고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5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봅시다. 1885년과 1886년 사이의 겨울. 1853년 생인 반 고흐가 서른 셋 즈음인데요. 반 고흐는 생애 처음으로 정식 미술교육을 받기 위해 벨기에 안트베르펀(Antwerpen)의 미술 학교에 등록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의 인생 역경을 되짚어보면 1886년 벨기에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게 된 것은 반 고흐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카미유피사로, 에밀베르나르(Emile Bernard) 등과 자주 만나며 인상주의를 접하게 되었고, 폴 시냑(Paul Signac), 조루즈 쇠라(Georges-Pierre Seurat) 등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기법도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반 고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또 있었죠. 바로 일본 판화인 우끼요에(浮世繪)였습니다. 우끼요에는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 즉 현세의 이모저모를 그려낸 그림이라는 뜻으로, 일본 에도 시대에 성립된 일종의 풍속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는 우끼요에의 밝은 색채와 캔버스 공간의 활용, 특히 선의 역할에 감탄했죠.그리고 우끼요에 판화작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작품 수집을 넘어 <탕기아저씨의 초상(Portrait of Pere Tanguy, 1887)>과 같은 작품에서는 우끼요에를 직접 배경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예술가의 방(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1989)〉에 대해 “그림자가 제거되었고, 색채는 일본 목판화에서처럼 얕고 단순하게 칠해졌어.” 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인상파와 그리고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 속에 그의 작품은 어두웠던 화풍에서 벗어나 밝은 화풍으로 변화했고, 이전보다 정열적으로 작품활동에 임했습니다. 각박한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로 갔지만 이시기에 고흐는 대표작인 <정물 :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1888)과 <밤의 카페 테라스>(1888)를 포함 2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삶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정신병을 앓았고, 고갱과의 다툼 속의 그의 귀를 잘라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끝내는 권총 자살을 했습니다.
불행했던 그의 말로와는 달리 그의 작품은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빈센트의 방>,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등등… 바로 동서양의 만남 속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