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버스 신촌 쪽으로 가나요?”
버스에 한 발만 올리고 이렇게 물으면 십중팔구는 “안가요”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옵니다. 노선표엔 분명 신촌이 있고 이 길이 신촌 방향이 맞는데도 어찌된 노릇인지 안간답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건너편에서 타라”고 말씀해주는 분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이 버스 신촌 쪽으로 가나요?” 재차 확인한 뒤에야 말이죠.
버스 노선표는 암호표 같습니다. 버스가 어디서 어디까지 어떤 경로를 통해 가는지는 아주 상세하게 보여주는데, 정작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방법은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이 버스를 타면 되겠네.’ 고민 끝에 자신만만하게 올라탄 버스였는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원치않는 ‘시티투어’를 하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 전역의 버스 노선표가 이런 상태였을 겁니다. 서울에만 수천 개의 버스 정류장이 있을 텐데 이걸 전부 다 개선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할까요? 돈과 시간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럼 어떤 모양으로 버스 노선표를 개선하면 되는 걸까요?
풀기 힘든 난제 같지만,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화살표 청년’ 이민호씨는 지난 11년 가을부터 기존의 버스 노선표에 빨간색 화살표 하나를 더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 전역의 버스 정류장을 돌아다니면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스티커를 붙인 것이지요. 막대한 돈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던 문제가 한 청년의 ‘별 것 아닌 것 같은’ 아이디어로 해결된 셈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아이디어는 행동력과 결합되면서 보다 큰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달걀(발상의 전환)’인 것이지요. 이민호씨가 서울시로부터 표창을 받으면서 개선 요구사항을 서울시가 받아들였고, 자기도 버스 노선표에 화살표를 붙여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화살표 액션단’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수 년간 취업준비생이던 이민호씨가 ‘화살표 청년’으로 보여준 아이디어와 행동력을 인정받아 최근 국내 유수의 기업에 입사한 일입니다.
이민호씨는 화살표 붙이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자신이 ‘길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지적성능력 검사에서 공간 지각력 문제는 거의 맞춰 본적이 없다고 해요. 그래서 스마트폰이 있기 전에는 버스노선도는 엄두도 못내고 지하철만 탔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된 지금은 어떨까요? 그는 여전히 화살표가 유용하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버스를 타다 보면 어르신이 운전기사에게 역 이름을 물으며 확인하는 모습을 종종 봐요. 안타깝죠. ‘노선도에 방향표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어보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운전기사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할 것 같았어요.”
커다란 변화가 반드시 커다란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느낀 불편함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소하려는 작은 노력이 큰 편리함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버스 노선표에 작은 화살표 하나를 더한(+) 이민호씨가 그와 같은 길치인 사람들과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그리고 자기의 삶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일으킨 것을 보면 말이죠.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작은 더하기 하나가 상상, 그 이상의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