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0
서울역에서 약 2시간 가량을 달려 울산역에 도착한 뒤, 버스로 이동해 30분 정도를 더 가니 장생포에 있는 울산 세관 통선장에 다다랐습니다. 외국 무역선 출입자는 이렇게 세관 통선장을 경유하여 휴대품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요, 이를 위반할 시 관세법에 따라 처벌받는다고 해요. 실제로 영해는 대한민국 소속이지만, 선상은 국내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하네요 🙂 (참고로 제가 탄 원유선은 몰타 국적이었답니다~)
제 눈 앞에 놓여진 배는 배가 맞긴 한데, 크기가 아담한 통선*이었습니다. ‘어라…? 내가 상상했던 그 배가 아니잖아?’라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렇게 설명을 해주셨답니다.
“원유선은 수심이 깊지 않은 부두에는 정박이 불가능해요. 선박의 규모가 큰 만큼, 깊이도 무척 깊거든요. 그래서 작은 통선을 타고 들어가, 중간 정박 지점에서 원유선으로 옮겨 타야 하는 것이지요.”
*통선: 항만 안에서 정박 중인 선박과 육지간의 연락을 중계하기 위해 사용되는 선박
안전모, 안전화에 구명조끼까지 착용한 뒤 원유선을 향해 출발~! 그런데, 생각보다 바다가 잔잔했습니다. 보통 방파제를 지나면 파도가 거세진다고 해서 뱃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 날은 운 좋게 날씨가 참 좋았답니다!
“저것은 뭔가요@_@?”
배도 아닌 것이 바다 위에 둥둥 떠있어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것, 바로 부이(Buoy)랍니다.
부이란 배를 안전하게 접안(接岸: 배를 안벽이나 육지에 댐)하고 그 다음에 원유를 운반할 수 있도록 하는 해상하역장치 인데요. 부이에 달려있는 플로팅 호스로 배를 고정하고, 원유선이 싣고 온 원유를 해상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답니다. 일종의 터미널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죠? SK이노베이션은 현재 2개의 부이를 운영 중입니다. 🙂
통선을 타고 지나가면서 본 부이는 꽤나 작아 보였는데요. 무려 부이 위에서 16명이나 일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라는 설명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부이의 엄청난 크기에 또 한번 놀랐답니다.
가까이 가니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작은 배의 정체는 바로 예인선이었습니다. 이 예인선은 부이 옆에 대기하며 선박이 하역하는 동안 안전하게 거리를 유지하는지 등을 지켜본다고 해요. 부이에 대한 설명은, 잠시 뒤에 원유선 데크에서 다시 이어갈게요 🙂
30분 정도 통선을 타고 가다 드디어 저희가 탈 말리부(MALIBU) 호에 도착했습니다. 눈 앞에서 보니 그 크기와 웅장함에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소~올직히 말씀 드리면, 이 곳에 오기전까지 저는 ‘배가 커도 얼마나 크겠어?’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요. 실제로 눈앞에서 원유선을 마주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구요.
원유선은 일반 화물 운송선과 다르게 설계된 선박인데요. 종류는 적재용량에 따라 구분된답니다:) 8만 여톤을 실을 수 있는 Aframax부터, 30만톤을 훌쩍 넘는 용량도 선적 가능한 ULCC까지 있지요.
그 중 말리부호의 종류는 Suezmax에 해당되는데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만재(滿載)한 상태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원유선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이 네이밍, 정말 센스 있지 않나요?
이제 원유선에 도착했으니, 승선을 해야겠죠?
승선하는 방법은, 파도에 위아래로 흔들리는 통선과 원유선의 사다리가 가장 가까울 때 점프하여 타는 것인데요. 평소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저임에도, 조금 무서울 정도로 스릴이 넘쳤던 승선 과정이었네요 🙂
원유선의 역할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원유 생산지에서 원유를 운송해오는, 정유 산업의 핵심 역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요, 원유가 수입되는 경로는 100%해상, 즉 배를 통해서만 들어오게 됩니다. (원유선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랍니다.) 그렇다면 이 말리부호는 어디에서 원유를 가져온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중동’이라는 대답을 하실 것 같은데요:) 정답은 바로 “카자흐스탄”입니다.
일반적으로 국내 정유사는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경향이 매우 높지만, SK이노베이션은 차별화된 원유 도입처 다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요.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은 중동 지역의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세계 여러 곳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있답니다.
특히, 최근 SK이노베이션은 미국산 원유와 멕시코산 원유 도입을 결정했는데요. 10월 중순에 국내로 도착한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원유 도입처 다변화가 왜 특별할까요?
핵심은 SK이노베이션의 최적화 기술(Optimization)에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수 십 년 간 축적해온 전 세계 다양한 원유 유종들에 대한 노하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제품 시장의 시황과 생산설비와의 궁합을 고려해 여러 종류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데요. 원유 시장의 가격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격으로 필요한 양을 구매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서 품질 개선도 이룰 수 있는 것이죠.
SK이노베이션이 다른 경쟁사들 대비하여 압도적인 호실적을 거두는 비결이 이와 같은 과학적인 원유 도입 시스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갑판에서 바라본 부이(Buoy)]
다시 배로 돌아와볼까요? 배에 올라 가장 먼저 간 데크(Deck, 갑판)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부이(Buoy)였는데요.
좀 전에 통선에서 보던 것과 달리, 눈 앞에서 본 부이는 굉장히 크더라구요.
앞에서 살짝 말씀 드린 것처럼 부이는 원유선이 싣고 온 원유를 해저 송유관으로 연결해 육지의 원유 저장 탱크로 보내는 일을 하는데요. 겉보기에는 그저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듯한 작은 물체 같은데, 무척 중요한 일을 한다니 잘 믿기지 않으시죠? 비밀은 바로 바다 밑에 있습니다.
원유선과 Buoy Body만 물 위에 떠 있지만, 그 아래에는 수상/수중 호스와 해저배관 등이 있어요. 계류로프로 원유선을 부이와 고정하고, 수상 호스와 수중 호스를 통해 원유를 해저 배관으로 보내는 것이죠. 말리부호가 싣고 온 카자흐스탄 원유 100만 배럴 중 23만 5천 배럴이 울산 SK CLX내 원유 저장탱크로 옮겨지는데, 이 과정에 약 5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네요 🙂
[배의 심장, 엔진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원유선 최하층부에 위치한 엔진룸.
지하에 도착해, 엔진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너무나 시끄러운 소리와 뜨거운 열기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배가 잠시 정박하던 상황이라, 엔진은 멈춰 있는 줄 알았는데 왠 엔진 소리일까요? 메인 엔진은 꺼져 있어도, 선체 내부에 보일러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발전기는 끊임 없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깔끔한 외관의 반전 매력을 보여준 엔진룸! 올해 건조된 선박이라, 모든 시설이 신식이어서 무척이나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사진의 오른쪽은 바로 엔진룸의 모든 공정을 디지털로 관리하는 모니터실인데요. 수많은 모니터와 CCTV화면이 설치된 이곳에서는 발전기와 엔진 등 여러 공정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시 뒤에 설명 드릴 화물 조정실에서 담당하는 하역 업무를 어시스트 하는 곳이기도 하죠.
[배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곳, 브릿지(선장실)]
후텁지근한 엔진룸을 빠져 나와 향한 곳은, 최상층에 위치한 브릿지(선장실)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는데요, 이곳에서 발견한 조금 특별한 경고문!
혹시라도 엘리베이터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선박 운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 위함일 텐데요. 비행기의 기장과 부기장이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겠죠?
들어가자마자 투명한 유리 너머로 펼쳐진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웠는데요. 출발 시 조금 흐렸던 하늘이, 브릿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너무나 맑아진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보니, 데크에서 보던 전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구요 🙂
제가 브릿지에 방문한 시점인 원유선이 정박되어 있는 상태라, 캡틴이 따로 운항을 하지는 않으셨는데요. 그래서 운이 좋게도, 브릿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캡틴에게 직접 설명을 듣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답니다.
[화물 선적과 하역을 책임지는 화물 조정실 (Cargo Control Room)]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화물 조정실, 카고 컨트롤 룸입니다. 화물의 선적과 하역을 담당하는 곳인데요. 모든 화물선이 그러하지만, 특히나 원유선의 경우 엄청난 양의 원유를 육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Chief Officer(일등 항해사)의 책임은 무척이나 막중합니다.
이 곳에서는 안전한 원유의 운반을 위해 valve positions와 cargo tank liquid levels을 모니터링한다고 해요. 선적과 하역의 모든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variation)들을 이곳에서 판단, 결정하며 SK 울산CLX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화물 조정실. 브릿지 만큼이나 원유선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합니다!
화물 조정실을 끝으로 원유선 견학을 마치고 다시 통선으로 하선했는데요. 통선 승선 과정과 동일하게 파도의 흐름을 타야 하는 탓에, 내릴 때 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는 것은 비밀~
이렇게 말리부호를 뒤로 하고 향하는 곳은 바로 SK 울산CLX인데요. SK이노베이션의 주력 생산기지인 울산 SK CLX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