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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섯 눈을 가진 라이브 드로잉 작가 김정기
2016.10.24 | SKinno News

라이브 드로잉 작가 김정기의 인터뷰를 통보하는 취재기자에게 대뜸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김정기라는 작가를 모르기도 하거니와 ‘라이브 드로잉 작가’라는 용어조차도 생소했기에 무식한 질문을 한 게다.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작가입니다.
밑그림이나 참고자료 없이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는 ‘라이브 드로잉 쇼(Live Drawing Show)’ 전문가인데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영상이 SK이노베이션의 광고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영상이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에 공개되자
두 달 만에 8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김정기라는 인물을 검색했다. 그의 직업엔 만화가로 표시되어있었다. 찾고자 했던 그 영상은 쉽게 검색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던 터였다. (취재 당시엔 유튜브로 공개된 영상이었지만 지금은 TV 광고로도 나오고 있다.)

 

본문
장면은 이랬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남자가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둑한 공간엔 가로 5m, 세로 2m 길이의 백지만 덩그렇다. 빡빡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 남자가 붓 펜을 들었다. 붓을 움직이자 아무것도 없던 백지에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이윽고 석유 시추선, 유조선, 근로자, 공장, 자동차, 주유소가 백지에 채워졌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 세계지도였다.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은 ‘드로잉 천재, 드로잉 아티스트, 드로잉 신, 드로잉 인간문화재’라고 반응했다. 나 또한 적잖이 놀랐던 터라 그 반응들에 수긍이 갔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공간이 특이했다. 입구엔 미술학원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들어가서 보니 여러 작가들이 함께 작업하는 공간이었다. 각 작가들의 작업 책상 뒷벽엔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하지만 김정기 작가의 책상 뒷벽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창가에 낯익은 얼굴의 초상화가 덩그러니 있었다. 영상에서 봤던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눈이 여섯이었다. 게다가 코엔 콧물이 흐르는 독특한 자화상이었다. 김 작가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 자화상에 대해 물었다.

“이 그림은 뭡니까?”
“알자지라 TV가 촬영 중에 자화상을 그려 달래서 즉석으로 그린 것입니다.”
“콧물에다 눈이 여섯인 의미가 있습니까?”
“그냥 재미로 그린 겁니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냥 재미로 그렸다고 답하며 싱긋이 웃었다. 그 웃음과 자화상이 절묘하게 닮은 듯했다. 더 캐묻고 싶었으나 마침 취재기자가 도착했다.

 

본문2
인사를 나누고 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인터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낙서하듯 즉석에서 그리는 것이 라이브 드로잉이다.
이를테면 건물의 뼈대 작업 같은 거다. 이것이 한 장르가 된 거다.
과정까지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 이른바 ‘과정의 예술’이다.
내 안에 있는 콘텐츠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즉흥적으로 확장시켜나간다.
밑그림도 없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 안 된다.
광고로 보여 지는 영상은 2분이지만 실제론 사흘에 걸쳐 17시간 동안 그렸다.
시작은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였다.
9m 길이의 부스에 낙서하듯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걸 영상으로 찍어 재미 삼아 유튜브에 올렸는데 호응이 뜨거웠다.
이것을 계기로 2012년 프랑스 만화행사에 초청받았다.
2014년엔 크리스티 경매에 한국 전설을 소재로 한 라이브 드로잉 영상과 완성작을 함께 출품해서 판매했다.
경매하자는 요청도 신기했지만 팔린 것도 신기했다. 요즘은 국내활동 대비 해외 활동이 80퍼센트다.
올 2월 프랑스 전시에서만 3억 원 정도의 작품이 팔렸다.
낙서 한 장도 팔린다. 만화 원화 한 장도 300만 원 정도에 팔린다.
내 작품은 만화와 현대미술의 경계에 있다고 본다. 없는 시장을 만든 거다.

 

그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무심한 듯 덤덤하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덤덤한 그의 말투와는 달리 그의 이야기기는 신선했다.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했고 그만의 작업이 세계적인 예술로 자리매김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작업공간 뒷벽이 텅텅 비어 있는 이유도 짐작이 되었다. 죄다 해외에 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림 노트를 보여줬다. 노트엔 마치 일기처럼 여러 상황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만남이 그려져 있었다. 어떤 인연인지 물었다.

“그가 학습 만화책을 준비 중이었나 봅니다. 여러 작가의 포트폴리오 중 나를 선택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그의 집에 초청받기도 했고요. 얼마 전 한국에 와서도 미팅을 했었습니다. 그런 상황들을 그려놓은 겁니다.”

일본의 팝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만남 장면도 있었다.

“내 그림을 많이 소장 중입니다. 같이 콜라보를 준비 중이고요.”

그림들을 살펴 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그의 뒤통수엔 외계인처럼 하나같이 눈이 그려져 있었다.

“이 눈은 웬 겁니까?”

“언제나 지켜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답에서 처음 봤던 자화상의 의미를 찾았다. 눈이 여섯인 자화상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앞뒤, 좌우, 위아래 모두 지켜보고 살피는 데서 그의 라이브 드로잉이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직접 보고 느끼는 현실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그렇게 본 것을 라이브로 꺼내 쓸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대의 운을 잘만 난 덕이라고 했다. 별 어려움도 없었다고 했다. 단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운을 만난 결과라고 했다.

그때 말을 하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중지엔 혹처럼 불거진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는 운이라고 말했지만 그 굳은살이 지난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섯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본 것을 매일 그려왔던 일상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게다.


글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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